- 서귀포에서 만나는 친환경 제주밥상, 차롱치유밥상
- 네모난 도시락 형태의 직사각형 대나무 그릇, 차롱
- 10여 가지의 음식이 들어간 차롱 도시락
[파이낸셜리뷰=이동미 여행작가] “주로 밭에 점심 싸고 나갈 때, 제사음식 담는 데 사용하고, 그늘에 두면 통풍이 잘되어 음식이 신선하게 보관된답니다.”
‘차롱’ 이야기다. 차롱은 옛날 어르신들이 농사지으러 갈 때 점심을 싸 갔던 제주 지역의 그릇이다. 제주에서는 빙떡이나 빵 등 음식을 담기 위해 물기에 강하면서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대나무로 바구니를 만들어 썼다.
차롱에는 떡을 만들어 간수하기도 하고, 이웃이나 친척 집에 부조할 일이 생기면 음식을 담아 갔다. 밭에 갈 때 도시락으로 사용하고, 여름날 저녁에는 밥을 담은 후 마당 빨랫줄에 매달아 밥이 쉬는 것을 막았다. 차롱은 구덕과 함께 제주의 운반 문화와 식생활 문화를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제주 서귀포 호근마을에 가면 예부터 전해오는 차롱과 제주도 식문화를 접할 수 있다. 물을 많이 이용해야 하는 식생활 용구 재료로는 대나무가 최고였기에 대나무 생활 용구를 만들기 위해 집집이 대나무를 심었다. 특히 서귀포 지역은 대나무 생활용품을 만드는 죽공예 제작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죽공예품이 바로 ‘구덕’이다. 구덕은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로 여성들의 일상생활에 쓰임새가 가장 많은 생활 도구였다. 아기를 눕혀놓는 애기구덕, 물동이를 넣는 물구덕, 테왁 등을 담는 물질구덕 등 크기와 종류가 다양했다.
대나무를 쪼개 씨줄과 날줄을 엮어 평평하게 바닥을 만들고 대나무를 구부려 세워 옆면을 만들면 무언가 담을 수 있는 형태가 된다. 이때 네모난 도시락 형태의 직사각형 대나무 그릇을 만들면 차롱이다.
서귀포시 호근마을 고 김희창 어르신은 65년간 구덕 등 대나무 생활용품을 만들어 제23호 구덕장으로 무형문화재가 되신 분이다. 김희창 어르신이 차롱 만드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지만 호근마을에 가면 어르신이 만들고 가르쳐주신 대로 만든 차롱으로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 ‘차롱 치유 밥상’이다.
차롱 도시락 안에는 예쁘고 정갈한 음식 10여 가지가 들어있다. ‘위착’이라고 부르는 차롱 도시락 뚜껑은 꼬치류와 전을 덜어 먹는 덜음접시로 사용한다. 주먹밥은 오도독오도독 씹히는 맛이 좋은데 ‘톳’이 때문이다. 제주 바다에서 나는 톳을 넣어 간이 잘 맞고 식감이 매우 좋다. 제주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전복 꼬지, 돼지고기 꼬지, 그리고 제주 최고의 산나물 고사리로 만든 고사리 전까지 먹으면 입안에서 제주의 산과 바다, 들판이 만나 춤을 춘다.
가장 제주다운 건 역시 빙떡이다. 제주도식 메밀전병이라고 보면 되는데 간단해 보여도 제법 손이 많이 간다. 먼저 주재료인 무를 채 썰고 쪽파는 송송 썰어 함께 볶는다. 빙떡을 만들 때 대부분 무나물을 데쳐 쓰는데 호근마을은 볶아 쓰기에 더욱 고소한 맛이 올라온다.
메밀가루는 미지근한 물에 묽게 반죽하는데 저어서 들어 올렸을 때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점성이면 적당하다. 미지근하게 달구어진 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메밀 반죽을 얇게 펴서 지진다. 만들어진 메밀 지짐이 식기 전에 무나물을 넣고 ‘빙빙’ 말아주면 ‘빙떡’이 완성되어 차롱 도시락에 담긴다.
버섯전, 도라지무침, 방울토마토꼬지, 양배추말이, 브로콜리…. 하나씩 먹다 보니 양이 많아 주먹밥 하나는 간식으로 챙겼다. 달착지근한 고구마와 상큼한 귤로 입가심을 하며 차롱 도시락 정리해본다.
노끈은 당부받은 대로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예쁘게 갈무리를 하고 나니 차롱 도시락에는 귤껍질만 남는다. 귤껍질은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니 이것이 진정 친환경 밥상, 괜히 마음이 뿌듯해진다. 도시에서 배달 도시락을 먹을 땐 먹은 양보다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에 마음이 불편했었다.
정갈한 지역 먹거리와 전통을 담은 도시락, 차롱 문화를 이어가는 호근마을 주민들에게 보탬이 되는 경제구조, 이만하면 이상적인 밥상 아닌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이 상하지 않게 보존하던 조상들의 지혜까지 배워가게 하는 차롱 밥상은 지속 가능한 여행의 기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