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6일 병인양요 발발
[역사속 오늘리뷰] 10월 26일 병인양요 발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0.26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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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때 약탈 당한 외규장각 도서./사진=연합뉴스
병인양요 때 약탈 당한 외규장각 도서./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866년 10월 26일(그레고리력)은 조선이 프랑스와 전쟁을 벌인 병인양요가 발발한 날이다. 병인양요는 조선인 천주교 신자 8천여명과 프랑스 신부 9명을 처형한 병인박해에 대해 항의를 하기 위해 프랑스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우리나라와 프랑스 사이에서 일어난 최초의 전쟁이면서 현재까지는 마지막 전쟁이다. 병인양요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훗날 신미양요에게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강화도조약을 더욱 앞당기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주교에 관대했던 대원군

흥선대원군은 원래 천주교에 대해 관대했다. 하지만 1858년 프랑스의 베트남 침공 소식을 들은 흥선대원군은 프랑스가 베트남에게 했던 것처럼 조선도 식민지로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결국 병인박해를 일으켰다. 즉, 조선땅에 있는 천주교인들은 프랑스 침공의 선봉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프랑스 해군 극동 함대 사령관 로즈 제독은 병인박해 소식에 화를 냈다. 이에 조선땅을 침공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프랑스 해군성이 나폴레옹 3세의 공식 명령서를 전달하면서 병인양요가 시작됐다. 다만 프랑스 해군성은 로즈 제독에게 이번 원정이 국가적인 모험이니 신중하게 행동하라고 주문했다.

정족산성에서 패배

프랑스 군대는 강화도에서 파죽지세로 진입했다. 하지만 정족산성에서 패했다. 결국 로즈 제독 군대는 퇴각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조선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 함대의 원정을 막았다는 점에서 조선의 승리이다. 청나라가 아편전쟁 등으로 인해 외세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프랑스 함대를 물리쳤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조선은 청나라보다 강한 나라라는 인식을 하게 만들었다. 이는 서구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 상쇄되는 효과가 발생했고, 이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뜯어보면 프랑스 함대의 군대는 600명에 불과했고, 정족산성 전투 이전에도 조선군은 계속 패배를 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로즈 제독은 조선땅을 더욱 깊숙이 침투하는 것이 별 실익을 얻지 못한다고 판단해서 자진해서 물러간 것이기 때문에 조선군의 승리로 봐야 할 것인지는 해석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조선의 오판, 그리고 개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외세 그것도 서구열강에 맞서 승리를 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를 하면서 서구열강에게 먹혀들어갔다는 점에서 나름 큰 의미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게 함으로써 개화를 더욱 늦추게 만들었고, 그것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기회를 만들어주게 되면서 강화도조약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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