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도 ‘거거익선’…기업들, 크면 클수록 좋다는 소비자들 공략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불황형 소비’라는 말이 있다. 장기간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상황 속 소비자들이 가성비가 좋은 상품을 구입하려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신품보다는 리퍼‧중고거래에 대한 인기가 치솟고, 같은 값이라면 좀더 많은 양을 주는 곳에 끌리는가 하면 명품보다는 가성비, 오프라인 보다는 온라인으로 싸게 제품을 구입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불황형 소비패턴’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소비자물가지수가 2개월 연속 3%대를 유지하고 있는데다가, 부동산‧제조업 침체 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소비자들은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추구한다.
기업들은 일제히 ‘빅사이즈’ 제품들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넘어, 크면 클수록 좋다는 뜻의 ‘거거익선(巨巨益善)’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점보 제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봤다.
#빅사이즈 삼김…CU ‘슈퍼 라지킹 삼각김밥’
CU에서는 빅사이즈 삼각김밥 4개를 합친 초대형 삼각김밥으로 재구성한 ‘슈퍼 라지킹 삼각김밥’을 출시했다.
새롭게 선보인 슈퍼 라지킹 삼각김밥의 가격은 5900원. 일반적인 삼각김밥이 1200원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4배가 넘는 수준이다.
실제로 슈퍼 라지킹 삼각김밥은 기존의 빅사이즈 삼각김밥 4개를 하나의 큰 삼각형 용기에 나란히 담아, 초대형 사이즈의 삼각김밥 형태를 갖춘 이색상품이다. 맛은 ▲김치볶음 참치마요 ▲동원 고추참치 ▲크랩 참치마요 ▲간장바싹 불고기 등으로 구성됐다.
CU는 지난해 7월 1kg 짜리 특대용량 안주 ‘꾸이 포대’를 출시한 바 있으며, 초저가 PB인 득템시리즈 중 치즈 핫바 득템도 유사상품 중량보다 2배 가량 더 큰 180g의 대용량 상품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도시락 라면의 8배?…GS25 ‘점보 도시락’
GS25는 지난해 팔도의 스테디셀러 제품 ‘도시락 라면’ 8개를 한꺼번에 끓이는 ‘점보도시락면’이 선풍적 인기를 끌자, 2탄으로 ‘공간춘쟁반짬짜면’을 출시한 바 있다.
실제로 GS25에 따르면, 지난해 5월말 이벤트성으로 출시했던 점보도시락면은 먹방유튜버들의 도전과 소비자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70만개가 팔리면서 매출 60억원을 넘었다. 가열찬 인기에 GS25는 해당 제품을 상시 운영상품으로 바꿨다.
대용량 점보 라면 시즌2인 ‘공간춘쟁반짬짜면’은 군마트(PX)의 인기 레시피로 알려진 공화춘짜장과 간짬뽕을 결합한 짬짜면이다. 가로 34cm, 세로 28cm, 높이 9cm의 초대형 컵라면 용기에 일반 1인분 라면 8개와 공화춘 짜장소스 1개, 간짬뽕 소스 1개, 플레이크 1개, 매운소스 1개가 들어있다.
필요한 끓는 물의 양은 2.2리터이며, 취향에 따라 공화춘짜장과 간짬뽕을 반반씩 따로 조리해 나눠 먹거나 섞어먹을 수 있다.
#달덩이처럼 크네…SPC삼립 ‘크림대빵’
SPC삼립이 ‘정통 크림빵’ 출시 60주년을 맞아 한정으로 출시한 ‘크림대빵’도 빅사이즈 제품의 대표주자로 이름을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정통 크림빵은 지난 1964년 출시 이후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 19억개로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단일 브랜드 최다 판매 크림빵’으로 한국기록원과 미국 세계기록위원회(WRC)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은 바 있다. 대형 사이즈의 크림빵이 나온 것 역시 60년이라는 역사에 대한 헌정의 성격이 크다는 설명이다.
지난 2월22일 출시된 크림대빵은 기존 정통크림빵보다 ‘6.6배’ 큰 제품으로, 무게 역시 기존 75g에서 500g으로 6배 늘었다. 카카오톡 사전 예약 페이지에서 조기 품절되는 등 품귀현상을 빚었으며, 이에 SPC삼립은 일일 생산량을 기존 대비 3배로 늘렸다. 거거익선 트렌드에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공략해냈다는 분석이다.
#비빔밥도 곱빼기로…세븐일레븐 ‘맛장우곱빼기비빔밥’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CU와 GS25의 대용량 상품 출시에 대응해서 대형 사이즈 비빔밥을 선보였다. 제품명은 ‘맛장우곱빼기비빔밥’으로, 대표 인기 스테디셀러 도시락 상품 ‘전주식비빔밥’의 용량을 30%까지 증량시킨 것이 특징이다.
대용량 가성비 상품이라는 특성을 위해 기존 전주식비빔밥보다 그램(g)당 단가를 6.4%까지 낮춰 양은 늘리고 가격부담은 최소화했다.
제품은 우수한 밥맛을 위해 농촌진흥청 최고품질로 선정된 명품 ‘삼광미’를 사용하고 있으며 고명은 호박, 버섯, 청경채, 콩나물, 당근, 무나물, 로메인, 고추장 불고기 등 8종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계란후라이, 고추장, 참기름을 더했다.
#TV도 무조건 크게 봐야지…삼성전자 vs LG전자
편의점을 중심으로 한 식품 뿐만 아니라, 가전제품에서도 ‘거거익선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초대형 TV’ 시장에서의 격돌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삼성전자는 TV 신제품(2024년형 Neo QLED·삼성 OLED TV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진행된 신제품 론칭 기념행사에서 ▲초대형 ▲프리미엄 전략을 앞세워 그동안 LG전자가 주도해온 OLED TV 시장에서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용석우 사장은 전체적으로 TV 출하량은 줄었음에도 프리미엄 TV시장은 증가했다며, 국내 소비자들을 상대로 초대형‧프리미엄 TV 판매를 지속할 것이라 전했다. 현재 TV 사이즈는 65인치를 넘어 75인치, 85인치, 98인치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LG전자 역시도 이에 질세라 “고객이 지어준 ‘가전은 역시 LG’라는 명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제품 경쟁력은 삼성전자가 아닌 자신들이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제22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글로벌 TV 수요 자체에 둔화가 있었지만, LG전자는 올레드 라인업 외에 QNED라고 하는 새로운 TV를 추가해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강화하는 듀얼 트랙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며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삼성전자 대비 우위라고 거듭 자신감을 피력했다.
앞서 언급한 제품들 외에도 농심켈로그가 가격 변동 없이 컵시리얼 용량을 증량하거나, 가전제품이나 침대를 대용량으로 구입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크기가 크고 용량이 많은 제품을 선호하는 불황형 소비 형태인 ‘거거익선’ 성향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 쓰는 MZ세대 소비자들이 ‘인증샷’을 위해 관련 제품들을 구매하면서 빅사이즈 제품에 대한 인기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체들로서도 R&D 비용을 투입해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는 것보다 기존의 스테디셀러 제품의 사이즈를 키우는 형태가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마케팅 효과가 좋아서, 여러모로 이점이 크다. 이 때문에 식품‧유통업계에 불어 닥친 점보제품에 대한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