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글로벌 경영 환경이 날로 급변하면서, 기업들의 평균 수명도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회사 매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1935년 기준으로 90년에 달하던 기업 평균수명은 1975년 들어 30년으로 줄어들었고 2015년에는 ‘평균 15년’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일까. 대한민국에서는 30년 이상 된 기업에 대해 ‘장수기업’이라고들 말한다.
30년 이상도 대단한데, 무려 한 세기에 해당하는 ‘100년’이라는 오랜시간 동안 사업을 이어온 대단한 기업들이 있다. 이른바 ‘100년 기업’이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100년 기업에는 ‘삼양사’와 ‘하이트진로’가 있다. 두 기업 모두 1924년 10월에 창립한 이후 100년의 시간을 이어왔다. 삼양사의 창립기념일은 10월1일, 하이트진로는 10월3일이다.
본지는 [기업Hi스토리] 100년 기업① ‘삼양사’, [기업Hi스토리] 100년 기업② ‘하이트진로’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과 100년의 역사를 함께한 두 기업의 면면과 그 역사에 대해 돌아보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100년 기업만의 가치를 들여다봤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삼양사’의 역사
수당(秀堂) 김연수 선생,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
많은 이들이 ‘삼양사’를 불닭볶음면으로 유명한 삼양식품과 혼동하곤 하지만, 사실 두 기업은 뿌리부터 완전히 다른 회사인데다가 삼양사의 역사가 40년 가량 더 길다.
삼양식품은 전중윤 창업주가 1961년 설립해 60여년의 역사를 가진 반면, 삼양사는 창업주인 수당(秀堂) 김연수 명예회장이 일제강점기인 1924년 10월 삼양사의 전신인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하며 시작돼 무려 100년에 달하는 역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양그룹은 1924년 창립 이후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든다’는 기업 비전 아래 설탕‧밀가루‧섬유 등 국민 의식주와 직결되는 사업을 이어왔다.
1955년 삼양사 울산 제당공장을 준공하고 1969년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준공, 1975년 삼양사 목포 배합사료공장 준공, 1988년 대전 PET병공장 준공 및 삼남석유화학 설립 등 굵직굵직한 사업에 뛰어들며 꾸준히 몸집을 불려왔다.
현재 삼양사 제품들 중에서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꼽으라면 ▲큐원 ‘밀가루’와 ‘설탕’ ▲숙취해소제 ‘상쾌환’ 등을 꼽을 수 있다.
삼양사 창업주인 수당 김연수 선생은 생전 장학사업에도 열을 올렸는데 1939년 한국 최초의 민간장학재단 ‘양영재단’을 설립한 이후 1968년에는 ‘수당재단’을 설립하며 장학금‧연구비 지원 등 인재육성에 앞장서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온 덕에 그는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 철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수상했으며 1961년에는 한국경제협의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연수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서는 3남인 김상홍 명예회장과 5남 김상하 대표이사 사장의 공동경영 체제가 이뤄졌고, 현재의 삼양그룹은 김상홍 회장의 아들이자 김연수 명예회장의 손자인 김윤 회장이 이끌고 있다.
100년을 발판 삼아 ‘스페셜티’ 중심으로…삼양사의 재도약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삼양사는 연결기준 매출액 2조6514억원, 영업이익 1131억원을 달성했다. 2021년 2조3844억원, 영업이익 825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성장세는 지속된 모습이다.
삼양사의 사업부문은 크게 식품과 화학부문으로 나뉜다. 플라스틱‧소재 등을 중심으로 한 화학부문은 대부분 B2B(기업-기업 거래) 중심이고, 밀가루‧설탕 등을 핵심으로 하는 식품부문 역시도 B2C(기업-소비자 거래)보다는 B2B 쪽에서 강세를 보여 왔기에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삼양그룹은 오랜역사를 바탕으로 한 ‘안정’에서 벗어나 ‘변화와 혁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헬스 앤 웰니스(Health & Wellness) 소재 ▲반도체 등 첨단산업용 소재 ▲친환경 소재 등 스페셜티(고기능성)와 글로벌 중심으로 고도화하고 있다.
#설탕‧밀가루 넘어 ‘알룰로스’…차세대 원료‧소재 집중
설탕과 밀가루 등을 바탕으로 오랜기간 사업을 영위해온 삼양사가 내놓은 대표적인 스페셜티 제품은 대체 감미료인 ‘알룰로스’다. 알룰로스는 설탕 대비 70% 정도의 단맛을 내는 제로 칼로리의 대체 감미료로, 음료‧과자‧유제품‧소스 등에 두루 쓰인다.
삼양사는 2016년 자체 개발한 효소기술로 알룰로스 대량 생산에 성공한 이후 2020년부터 본격 생산에 돌입했다. 2022년에는 해상 운송시에도 균일한 품질유지가 가능해 해외진출에 용이한 ‘결정 알룰로스’도 선보였다.
이외에도 삼양사는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과 ‘프락토올리고당’ 등 건강기능식품 원료‧소재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은 식이섬유 함량이 85% 이상인 수용성 식이섬유로 배변활동 원활, 식후 혈당상승 억제, 혈중 중성지질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소재로 활용되며 ‘프락토올리고당’ 장내 유익균 증식 및 배변활동 원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건강기능식품 원료다.
삼양사는 설탕‧밀가루를 중심으로 쌓아올린 역량을 ▲알룰로스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 ▲프락토올리고당 등에 투입시키며, 차세대 원료‧소재 사업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플라스틱, 친환경을 입다…삼양사가 만든 업적들
기존에 ‘폴리카보네이트’를 중심으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에 주력하던 화학사업 부문 역시도 ESG경영에 대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친환경 소재 사업으로 체질을 강화하고 있다.
친환경 폴리카보네이트를 2022년 국내최초로 개발한데 이어 소각시 유독가스를 유발하지 않는 친환경 난연 폴리카보네이트 개발에도 성공했으며, 폐어망 리사이클 기업 넷스파와의 계약을 바탕으로 폐어망 재활용 플라스틱 펠릿(pellet)을 활용한 플라스틱 컴파운드 생산에도 앞장서고 있다.
친환경‧재생 플라스틱 소재들은 물성이 약해지는 단점이 있는데, 오랜기간 관련 사업을 지속해온 삼양사가 기술력으로 이를 극복해 일반 플라스틱과 동등한 수준이면서도 친환경이라는 가치를 더한 소재를 앞장서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계열사인 삼양이노켐은 전북 군산에 국내 최초로 석유 유래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 ‘이소소르비드’ 생산 공장을 준공하고, 탄소배출 저감에도 기여하고 있다. 친환경 흐름에 주목해 2022년 삼양패키징은 재활용 사업 부문을 물적 분할해 ‘삼양에코테크’를 설립하고 폐플라스틱 재활용 사업을 확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삼양홀딩스 바이오팜 그룹은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한 생산기지 구축, 신규 사업인 미용성형 분야 진출, 혁신 신약개발을 위한 R&D와 오픈이노베이션 추진 등의 과제를 수행 중이다.
▲화학 ▲식품 ▲의약바이오 ▲패키징 등을 중심으로 한 삼양그룹의 면면을 보면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기만 한 것들 투성이지만 ‘인류에게 필요한 것들을 제공함으로써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한다’는 비전을 위해 1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성장을 거듭해왔음을 알 수 있다.
현 회장인 삼양그룹의 김윤 회장은 홈페이지에 올린 인사말을 통해 “지금의 생각과 업무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장려해 세계적 수준의 역량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도약한다는 삼양그룹의 기업가치가 ‘100년’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