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Hi스토리] 100년 기업② ‘하이트진로’
[기업Hi스토리] 100년 기업② ‘하이트진로’
  • 박영주 기자
  • 승인 2024.04.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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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글로벌 경영 환경이 날로 급변하면서, 기업들의 평균 수명도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회사 매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1935년 기준으로 90년에 달하던 기업 평균수명은 1975년 들어 30년으로 줄어들었고 2015년에는 ‘평균 15년’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일까. 대한민국에서는 30년 이상 된 기업에 대해 ‘장수기업’이라고들 말한다.

30년 이상도 대단한데, 무려 한 세기에 해당하는 ‘100년’이라는 오랜시간 동안 사업을 이어온 대단한 기업들이 있다. 이른바 ‘100년 기업’이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100년 기업에는 ‘삼양사’와 ‘하이트진로’가 있다. 두 기업 모두 1924년 10월에 창립한 이후 100년의 시간을 이어왔다. 삼양사의 창립기념일은 10월1일, 하이트진로는 10월3일이다.
 
본지는 [기업Hi스토리] 100년 기업① ‘삼양사’, [기업Hi스토리] 100년 기업② ‘하이트진로’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과 100년의 역사를 함께한 두 기업의 면면과 그 역사에 대해 돌아보고, 이들이 가지고 있는 100년 기업만의 가치를 들여다봤다.

/사진=하이트진로
/사진=하이트진로

하이트맥주+진로=하이트진로, 100년 굴곡의 역사

하이트진로는 그 이름처럼 ‘하이트맥주’라는 회사와 ‘진로’라는 소주회사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대의 종합주류기업이다. 

진로의 역사는 1924년 평안남도 용강군에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진천양조상회(眞泉釀造商會)’, 하이트맥주의 역사는 1933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맥주회사 ‘조선맥주주식회사’를 모태로 한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많은 굴곡을 넘어온 하이트진로의 역사를 톺아보려면 소주 중심의 ‘진로’와 맥주 중심의 ‘하이트맥주’를 각각 조명해야만 한다. 

이들의 과거를 찬찬히 살펴보면 진로는 꾸준히 한길만을 걷는 ‘뚝심’을, 하이트맥주는 재도약을 위해 베스트셀러까지 제쳐두고 새 제품을 선보이는 ‘혁신’을 DNA로 보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양사가 ‘하이트진로’라는 한배를 타게 되면서, 뚝심과 혁신이라는 강점이 그룹 내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국내 최대 종합주류기업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자랑하고 있다. 

/사진=하이트진로
왼쪽 위는 진천양조상회, 왼쪽 아래는 초창기 진로병에 그려진 이미지. 오른쪽은 진로에서 참이슬까지의 변천사. /사진=하이트진로

진로에서 참이슬로…‘초록병 신화’ 써낸 진로
진로의 역사 한방울, 하이트진로 ‘일품진로’로 재탄생

먼저 소주의 역사를 들여다보자면, 지금은 ‘이즈백’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리는 은은한 푸른빛의 그 소주 ‘진로(眞露)’가 하이트진로 100년 역사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참 진(眞)에 이슬 로(露)자를 더한 한자 ‘진로’를 순우리말로 바꾸면 초록색 병의 ‘참이슬’이 된다는 것은 애주가라면 이미 다 아는 내용일 것이다.

무려 100년 전인 1924년 10월3일 평안남도 용강군에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탄생한 것이 진로 소주다. 제품명은 생산지인 진지(眞池)의 ‘진(眞)’과, 순곡으로 소주를 증류할 때 술방울이 이슬처럼 맺히는 제조방식에 따라 ‘이슬 로(露)’자를 합쳐 만들어졌다. 

초창기 갈색병이었던 진로 소주에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술을 즐기는 영물인 ‘원숭이’가 그려져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신길동에 둥지를 틀고 전국대상 영업을 개시하면서부터 마스코트를 지금의 ‘두꺼비’로 바뀌었다. 이북과는 달리 남쪽에서는 원숭이를 교활하고 잔망스럽다는 이미지가 컸기 때문이다. 

1961년까지의 진로는 35도의 ‘증류식 소주’였지만, 1965년 정부의 ‘양곡관리법’ 시행에 따라 주정에 물을 타는 희석식 소주가 대세로 굳어졌다. 이 시기부터 도수 30도의 희석식 진로 시대가 이어지다가 1975년부터 1983년까지는 지금의 진로이즈백과 똑같은 형태의 25도 진로소주가 소비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진로가 제2의 도약을 맞은 것은 1998년 ‘진로(眞露)’를 순우리말로 바꾼 ‘참이슬’이라는 제품이 출시되면서부터다. ‘소주=초록병’이라는 공식도 대나무숯 여과공법을 핵심으로 한 참이슬의 등장과 함께 자리잡혔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과거 두산이 강릉 경월소주를 인수하고 초록색의 ‘그린 소주’로 톡톡한 성과를 거두고 있던 찰나, 시장 탈환을 위해 진로가 야심차게 초록색 병의 참이슬 제품을 출시하고 25도라는 공식을 깬 ‘23도’의 순한 소주를 내세우면서 판도가 바꿔었다. 

현재는 20.1도의 참이슬 오리지널과 16도 참이슬 후레쉬로 두개 브랜드가 국내 초록병 소주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1970년대 국내 소주시장 점유율 1위 이후 지금까지 무려 50여년간 국내 점유율 1위 자리가 이어져오고 있다. 

하이트맥주에 안기면서 하이트진로라는 이름이 됐지만, 진로의 역사는 끊이질 않고 이어져오고 있다. 그것을 증명해주는 대표적인 제품들이 ‘진로이즈백’과 ‘일품진로’다.

/사진=하이트진로
'진로이즈100년' 광고영상 캡쳐. /사진=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2019년 뉴트로 열풍에 발맞춰 ‘진로이즈백’이라는 이름으로 그 옛날의 진로를 부활시켰다. 옛날의 모습은 비슷하게 가져가면서도 현대방식으로 리뉴얼 했으며, 진로 캐릭터 두꺼비를 핵심으로 한 캐릭터로 젊은 이미지를 강화했다. 도수 역시도 2030 세대가 선호하는 저도수의 ‘16.5도’로 개발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또다른 하이트진로의 대표작 ‘일품진로’는 그 옛날, 프리미엄 소주에 대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 진로가 선보인 ‘참나무통 맑은소주’의 원액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의 재해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사태로 1997년 진로가 부도 직전에 몰리면서 참나무통 맑은소주는 단종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진로를 품은 하이트맥주는 ‘오크통’을 버리지 않고 2007년 일품진로라는 이름으로 재탄생 시켰다. 

일품진로 오크43은 증류원액과 12년 목통숙성원액을 블렌딩한 프리미엄 소주이며, 일품진로 23년산은 당사 최고령 목통숙성원액 만을 사용해 매년 한정판으로 출시되는 제품이다. 하이트진로가 판매하는 일품진로는 문자 그대로 ‘진로의 역사’를 판매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사진=하이트진로
왼쪽은 조선맥주주식회사와 초창기 맥주인 크라운맥주의 라벨, 오른쪽은 하이트맥주, 필라이트, 테라 등 제품 이미지. /사진=하이트진로

조선맥주→하이트맥주
점유율 50% 돌파하며 1등 만들어준 ‘하이트’
하이트‧필라이트‧테라‧켈리, 혁신 담아낸 맥주 대표작들
‘카스’가 원래 진로거였어? 숨겨진 역사 속 맥주 이야기

이제 맥주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하이트진로 맥주의 역사는 1933년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설립된 ‘조선맥주주식회사’가 시작이다. 

영등포는 수질에 있어서는 최고의 지역으로 평가받았는데 최고의 부지에 자본금 600만원, 공장규모 10여만평의 큰 건물로 떡하니 자리 잡았다. 조선맥주 설립 4개월 후 OB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주식회사’가 영등포에 설립되기도 했다. 

조선맥주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공장이 일부 파괴됐지만, 1954년 국내 최초로 주한 UN군 군납업체로 선정되며 품질을 인정 받았다. 이때 납품된 맥주는 ‘크라운맥주’ 였다. UN군납을 발판삼아 1962년에는 국내 최초로 맥주 해외수출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하이트진로는 ‘조선맥주’ 시절이었던 과거부터 OB맥주의 전신인 ‘동양맥주’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중간에 법정관리 대상이 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76년 한독맥주 마산공장 인수, 1989년 전주공장, 1997년 강원공장을 건립하며 꾸준히 사세를 확장했다. 

시장 탈환을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하이트맥주에게 1위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은 1993년 크라운맥주의 뒤를 이어 출시된 ‘하이트맥주’였다. 

하이트맥주 출시 전인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이 불거지면서 두산그룹에 대한 불매운동 움직임이 일었고 OB맥주 역시도 타격을 받았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쏠린 가운데 암반 천연수로 만든 맥주 컨셉의 국내 최초 비열처리맥주 ‘하이트’는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조선맥주는 1998년 사명을 ‘하이트맥주 주식회사’로 변경했고, 1993년 30%였던 시장점유율은 1996년 42%까지 올랐으며 2000년에는 53%까지 치솟기도 했다. 약 40여년 만에 하이트진로가 OB맥주로부터 맥주업계 1위 자리를 탈환한 것이다. 

거침없는 성장세 속 2005년 8월, 하이트맥주는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를 인수했다. 인수 당시에는 승자의 저주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는 지금의 ‘하이트-진로 그룹’을 있게 한 당시 경영진의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이트진로는 대표작인 하이트 맥주에 그치지 않고 트렌드에 발맞춘 상품을 끊임없이 개발하며 소비자들의 입맛을 공략해왔다.

지난 2017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포주인 ‘필라이트’를 선보이면서 무려 “만원에 12캔”이라는 파격적인 광고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2019년에는 청정라거 ‘테라’를 선보며 카스가 지배하던 맥주시장 1위 자리를 탈환했다. 지난해인 2023년에는 올몰트 라거맥주 ‘켈리’를 추가하며 라인업을 더욱 강화했다. 

배우 공유가 광고모델을 맡은 2019년 출시한 청정라거 '테라'의 포스터(왼쪽)와 배우 손석구가 광고모델인 2023년 출시한 싱글몰트 '켈리'의 포스터. /사진=하이트진로
배우 공유가 광고모델을 맡은 2019년 출시한 청정라거 '테라'의 포스터(왼쪽)와 배우 손석구가 광고모델인 2023년 출시한 올몰트라거 '켈리'의 포스터. /사진=하이트진로

끝으로 한가지 아주 재밌는 역사 속 맥주 이야기를 꼽자면, 앞서 진로의 역사에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1991년 진로가 미국 쿠어스와 합작해 ‘진로 쿠어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1994년 제품 출시를 한 적이 있다. 

이 제품의 이름은 다름 아닌 현 OB맥주의 대표작 ‘카스(CASS)’. 

진로의 사세가 기울면서 1998년 벨기에 인터브루사와 지분 합작한 OB맥주가 진로 쿠어스를 인수했고, 이것이 지금의 OB맥주를 먹여 살리는 효자상품이 됐다는 것은 상당히 재밌는 대목이다. 

한편,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2조5201억원, 영업이익은 1239억이었다. 올해 100년을 맞은 하이트진로는 맥주 부문의 시장점유율 상승과 소주 부문의 견고한 성장을 발판 삼아 제2의 도약과 변화의 원년을 만들어 나아가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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