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성수동 연무장길을 걷던 두 청년은 몇 년 새 훌쩍 번화한 길목을 넋 놓고 바라봤다.
뜨거워진 상권, 팝업스토어 성지
올 때마다 색다른 간판과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이곳은 체험형 팝업스토어의 성지라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31일 방문했을 때는 드라마 ‘삼식이 삼촌’, 화장품 브랜드 ‘닥터지(DR.G)’, 패션 브랜드 ‘세터(Satur)’, 향수 브랜드 ‘킨포크(Kinfolk)’ 등의 팝업스토어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우후죽순 생겼다가 사라지는 팝업스토어가 곳곳에 자리한 만큼, 팝업스토어 임대를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 간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성수동에 있는 관련 부동산만 30곳이 훌쩍 넘는다.
팝업스토어를 위한 임대차 계약은 대부분 권리금, 보증금 없이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업계에선 이를 ‘깔세'라고 부른다.
성수동이 젊은이와 관광객 사이에서 핫플이 된 만큼, 상가 임대료도 만만치 않다. 주로 연무장길과 카페 거리가 가장 높은 임대료를 자랑한다.
연무장길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지금 서울에서 성수동 임대료가 가장 비싼 상황이고, 저번에 열린 BTS 팝업처럼 제일 비싼 곳은 일주일에 1억씩도 한다”고 전했다.
입지마다 다르다지만 대부분의 팝업스토어 임대료는 통상적으로 건물주인 임차인이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다. 공인중개사는 15평 남짓인 장소를 하루 동안 빌리는 데 최소 50만원에서 200만원대까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31일 공간 중개 플랫폼인 ’쉐어잇‘에 나온 정보 기준에 따르면, 261평에 달하는 대형 공간을 하루 동안 2500만원에 대여하고 있었다.
임대료가 높다지만 그렇다고 인지도 있는 브랜드만 들어오는 건 아니라고 한다. 유동 인구가 많은 만큼 홍보 효과는 확실하기 때문이다.
떴다방인 팝업스토어, 부실한 소비자 보호 체계
그러나 일시적으로 운영되는 팝업스토어의 특성상, 물건을 구매하는 일부 소비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우려가 있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이 올해 1분기 동안 서울에서 운영된 팝업스토어 매장 20곳의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환불 규정이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을 판매하는 매장 18곳의 환불 관련 약관을 조사해 보니, 구매 후 14일 이내에 환불이 가능한 매장은 1곳에 불과했다. 이외에 ‘7일 이내’ 8곳, ‘매장 운영 기간 내’ 5곳, ‘환불 불가’ 4곳으로 나타나 대부분 소비자에게 불리했다.
또한 7곳에서는 매장 내에서 교환과 환불에 관한 규정 안내가 이뤄지지 않았다. 영수증에 있는 규정과 매장에서 안내한 규정이 다른 곳도 6곳으로 나타나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줬다.
개인정보 활용 여부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고지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9곳에서는 매장 앞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입장을 예약해야 했는데, 4곳은 수집하는 개인정보 항목과 보유기간을 소비자에게 안내하지 않았다. 3곳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을 소비자의 동의 철회 또는 탈퇴 시로 정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했다.
또한 2곳의 매장에서는 소비자의 동의 없이 초상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거나, 소비자의 매장 입장 행위를 초상권 사용 동의로 간주한다고 고지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얼굴이 노출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남은 상인들은 울상
남겨진 상인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팝업스토어는 반짝 오픈하고 자리를 뜬다지만, 3~4배 가까이 오른 임대료를 계속 감당해야 하는 상인들은 골머리를 앓는 상황이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기존에 있던 영세 상인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에 따른 원주민 내몰림 현상)’은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 주요 상권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이들은 새로운 일의 터전을 찾아 대부분 자리를 뜬 상태다.
연무장길에서 9년째 디자인 시공사를 운영 중인 권 사장은 동네 상권이 변해가는 과정을 몸소 경험했다. 권 사장은 “이 건물 지하에 있던 상인도, 3층에 있던 상인도 다 나갔어요. 저쪽 골목에서 목공소를 운영하는 건물주로 추정되는 사장님 빼고는... 기존 동네에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자리를 뜬 상황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아들 생각하면 5년은 더 일해야 하는데...
권 사장도 건물주가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자 하는 수 없이 이사를 계획 중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계속 있고 싶어도 월세 감당을 못하니까 하는 수 없이 이사를 생각해야 해요. 거래처가 다 근처에 있어서 멀리는 못 가는데, 그래도 여기보다는 좀 한산하고 임대료가 덜한 곳으로요. 한 달에 1000만원을 요구하는 데 하는 수 있나요. 주변도 다 올라서 마찬가지긴 한데 나가라니 어쩌겠어요.”
단기간 운영되는 팝업스토어 수준의 임대료가 반영돼 시세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라 상인들의 무거운 한숨이 터져 나오는 상황이다.
기존 상인들을 보호하고자 지난 2018년부터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대료 증액 상한을 1년간 최대 5%로 제한했으나, 단기로 임대하는 팝업스토어의 경우엔 ‘임대료 5% 상한’ 제한 적용을 받지 않는다.
권 사장은 “한평생 해오던 일인데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어요. 아직 대학생인 아들 둘을 먹여 살리려면 5년은 더 일해야 하는데 내몰리는 상황이라 막막합니다.”라는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이처럼 중소형 브랜드나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매장들이 임대료 부담이 커져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면서, 일각에서는 팝업스토어 임대료 상한선을 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