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 '무당 엄마의 엄마'가 된 사연
[인터뷰]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 '무당 엄마의 엄마'가 된 사연
  • 김희연 기자
  • 승인 2024.07.23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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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예술계의 대모, 양혜숙 이사장의 한극 운동은 현재진행 중

[파이낸셔리뷰=김희연 기자] “누가 무당을 국제 무대에 세울 생각을 했겠어요. 그래서 제가 무당 엄마의 엄마가 된 거예요.”

프로듀서 민희진이 아이돌계에서 뉴진스 맘이 됐다면 한국공연예술원의 양혜숙 이사장은 무당계의 엄마가 된 인물이다.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사진=김희연 기자

공연 문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 온 양혜숙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독창적 공연예술인 ‘한극(韓劇)’을 구축함과 동시에 국제적 교류를 통해 세계 속에 한국 예술의 위상을 제고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무당 엄마의 엄마가 된 사연
양혜숙 이사장이 무속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961년 떠난 독일 유학 생활 중 문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본래 비교문학을 연구하고 싶었던 그는 독일이나 가까운 일본, 중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유독 희곡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 희곡 문화가 이렇게 약한지 찾아보니까 우리나라에서 한 공연들은 거의 산문에 가깝더라고. 텍스트가 없어요. 텍스트가 없으니까 희곡이 없는 거예요. 중국이나 일본을 보면 공연을 전제로 한 텍스트가 많아요.”

우리 공연 예술의 원형에 관심이 생긴 양혜숙 이사장은 관극사(觀劇史)를 연구하며 문화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굿이라는 행위를 발견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 단군 이래 통치는 정치의 지배장인 왕검과 함께 하늘과 소통하는 제사장(무당)도 큰 역할을 차지했다. 양혜숙 이사장은 문자가 없던 시대에 굿의 형태가 춤이나 노래와 같은 소리로 이어지다 보니 성경 같은 교리 교본이 없어, 쉽게 무시당하고 비문화적인 취급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사진=김희연 기자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사진=김희연 기자

“공연 문화가 발달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조상들은 굿이나 보면서 떡을 먹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공연 문화의 시작은 굿이었어요. 알고 보면 굿은 소중한 우리 문화의 원형인데 여태까지 사람들이 너무 천박하게 여기고 무시했더라고요. 이때부터 굿을 연구하고 무당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무당의 대모’라는 별명도 생겨났어요.”

양혜숙 이사장은 무당의 인식 개선에 누구보다도 앞장서며 '샤마니카(SHAMANIKA)'라는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기도 했다. 샤만(shaman)은 오늘날 ‘샤마니즘’ 등 무속을 나타내는 말로 통용되지만, 용어 속에 여전히 편견이 존재하며 저급한 문화 행위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에 인류 본연의 시원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성이 인정되는 샤마니카라는 용어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샤마니카는 'Shaman'과 융합한 단어이며, 어미 '-ka'는 영어의 'ics', 라틴어의 '-ica'와 같은 뜻을 지닌 그리스어의 어미를 사용했다. 샤만(shaman)에서 나아가 어떤 한 분야의 발생, 기원, 변화 등을 포함하는 모든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 문화의 원형적 특성과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돼요. <무속의 형태와 근원>을 잘 보유하고 우리 문화의 특성적 근원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혜숙 이사장은 한국공연예술의 원형드라마인 샤마니카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세계 무대에서 고유의 것을 보여주며 전 세계인이 하나 되는 시도를 이어왔다. 그는 언젠가 ‘굿’이라는 이름이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재로 당당하게 등재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양혜숙 이사장의 일대기
1936년생으로 90세를 앞둔 양혜숙 이사장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다. 교수 생활을 은퇴한 지금까지도 우리 고유의 것을 보여주는 ‘한극’에 대한 사랑은 날로 커져 제작자, 평론가, 연극인 연출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 이사장은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튀빙겐 대학의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 생활을 하면서 독문학, 미술사, 철학을 전공했다. 

당시 아시아 언어학부에 중국어와 일본어학과만이 존재했을 때 학생 신분으로 한국어과 강사를 맡았던 그는 오늘날 튀빙엔 대학 한국어과가 베를린대학, 보쿰대학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한국어과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하는 등 한국 알리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1967년 고국으로 돌아온 이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30년 넘게 독어독문학과의 연극 담당 교수 생활을 하며 독일 연극 작품 17편을 독일어 및 한국어 번역으로 무대 공연을 올렸다. 

연극평론가로 활동했는데, 그가 교수 생활을 시작하던 1960~7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공연계는 서양의 것을 따라 하기에 급급했다고 한다. 이런 사대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는 우리 고유의 것을 연구하고 싶은 양혜숙 이사장의 학구열을 더욱 불태웠다.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사진=김희연 기자

“그때만 해도 돈이 없어 공연 올리기도 힘들었고, 또 서양 공연한다고 머리에 빨간 물 들이고 노란 물 들이고 하면 두세 달은 그냥 지나가는 세월이 안타까웠어요. 이처럼 우리 고유의 문화는 등한시되는 시대였기에 외세의 것이 아닌 우리의 연극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라도 뭔가를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게 평론이에요.”
 
#한국공연예술원을 이어오다

양혜숙 이사장은 평론에 그치지 않고 학회와 공연예술원을 통해서도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고 살리는 활동에 매진해 왔다. 1990년 공연예술학회를 설립한 데 이어 1996년에는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을 세워 초대원장을 거쳐 2008년부터 이사장을 맡아 왔다.

“이화여대에서 독일 연극을 올릴 때 한국 사람의 몸과 소리로 연기하는 데 독일인의 흉내를 완전히 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할 때는 어떻게 했는지, 또 몸놀림은 어떻게 했는지는 잊혀가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더욱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게 우리 전통이에요. 우리 고유의 것인 봉산 탈춤이나 굿 등을 연구했어요.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공연예술학회를 만들었는데, 보니까 나처럼 서양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은 서양 학문을 연구하느라 바쁘더라고요. 

학회보다는 굿이나 탈춤처럼 우리 문화가 담긴 극을 직접 보여주자고 생각해 만든 게 바로 1996년에 세운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원이에요. 특히나 종교체험은 남이 해줄 수가 없어서 직접 굿의 원형을 찾아 전파하는 활동을 펼쳤죠.”

그는 1997년부터 최근까지 샤마니카 페스티벌, 샤마니카 심포지움, 샤마니카 프로젝트 등 다채로운 연구와 실천을 이어가며 ‘한극(韓劇)’을 정립했다.

#한극이란
한극이라는 단어에 일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한자 표기법을 써서 혹여나 중국의 연극으로 착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반응이 난무한 가운데, 양혜숙 이사장은 우리의 공연 예술을 한극이라고 칭한 이유를 밝혔다. 

“우리가 동양어권이다 보니 용어에 한자를 쓰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잘 알아들을 수 있죠. 한극의 한은 한민족을 의미하는 ‘한(韓)’을 사용했어요. 또 ‘극(劇)’의 이라는 단어 속에는 춤과 노래, 연극 등을 함축하고 있어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우리의 공연 예술을 ‘한극(韓劇)’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고유의 전통이 바탕이 된 공연인 한극은 연극, 뮤지컬 등을 포함한 모든 장르를 아우른다. 양혜숙 이사장이 한국인 고유의 정서와 표현법에 깊은 관심을 두고 우리 연극의 뿌리 찾기 작업을 펼쳐온 활동의 종착지라고 할 수 있다. 

한극이라는 용어에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예술을 숭고하게 여겼으면 하는 양 이사장의 바람도 담겨있다. 

“1996년도만 해도 무당은 그냥 딴따라 취급을 했는데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예술을 하는 사람이 예인이고 예인이 갖춰야 할 품격이 있는데 그 품격을 전혀 무시한 채 공연 예술을 하면 그 나라의 예술가가 뭐가 되겠어요. 예인과 예인의 사상을 담는 그릇이 ‘한극(韓劇)’이에요”

한국공연예술원은 그간 한극을 펼치며 실제로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대표적으로 오이디푸스의 동양적 해석과 윤회사상을 다룬 <업, 까르마>는 베트남 주최 제1회 국제실험연극제에서 대상 없는 특상을 수상했다. 또한 <제9회 ANTIQUE GREEK DRAMA FESTIVAL>에 초청받아 아세아권으로서는 최초로 참여해 유럽외권 작품으로 유네스코 지정 기록문화유산 유적지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레이디 원앙>으로는 창작연희페스티발에서 인기상을 받는 쾌거를 거두며 한류의 새로운 콘텐츠로서의 ‘한극’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여행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한국공연예술원에 코팩(KOPAC) 시어터를 만들어 공연을 펼치니 국제 무대에 초청을 받았어요. 베트남 실험연극제에 가서 상을 탔는데, 또 수상을 하니까 연극이란 게 굉장히 자리 잡힌 유럽에서 부르기도 했죠. 

이런 식으로 우리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가 각 민족의 특징을 살린 연극을 해요. 우리 고유의 문화가 자리 잡지 않으면 또 서양을 비롯한 외부 세력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사람은 무엇으로 신나는가
양혜숙 이사장은 지난 6월 2007년부터 <춤지>에 기고한 ‘문화살롱’을 엮어 ‘사람은 무엇으로 신나는가’를 집필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신나는가./사진=네이버 도서
사람은 무엇으로 신나는가./사진=네이버 도서

그는 저서에서 오늘의 한국문화를 크게 두 축으로 나누어 ‘신명’과 ‘절제’라고 표현하고 있다.

먼저 자유분방한 탈춤과 굿의 재현 속에서 감지되는 우리 민속의 신명은 한국문화의 흐름 속에 큰 축을 이루며 활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왔다. 이어 한국 문화가 억압에 가까운 절제의 굴레 속에 활력과 절제의 양면성을 조화롭게 유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 공연을 보니까 우리가 볼 때는 잘 몰랐던 굉장히 신비스럽고,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성한 그런 느낌을 주더라고요. 어딘가 세계와 동떨어진 부분이 있는 게 우리나라 예술이에요. 되게 신이 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야. 우리 탈춤을 봐요. 얼마나 사회를 비판하는 현실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는지. 자기 마음대로 뿜어내는 것 같은 궁중의 춘앵무를 보면 절제의 극치예요. 절대로 흩어지지 않는 엄숙함과 엄격함이 있는 게 또 우리 공연 예술의 한 극이에요. 그런 양극을 다 가지고 있는 게 우리의 전통이라 할 수 있죠.”

#한극 양혜숙 상
이처럼 한평생 우리 문화 연구에 몸 담그며 ‘한극’의 발전에 기여해 온 양혜숙 이사장은 지금도 한극의 세계화를 위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다. 

올 10월부터 개최하는 콘테스트도 비슷한 취지에서 열리는 행사다. ‘한극 양혜숙 상’은 이와 같은 한극의 우리다움을 지키면서도 세계화를 다져나가고자 마련한 시상식이다. 

양 이사장은 중첩되는 축제, 연극제, 무용제, 공연예술제 등은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같으면서 과대포장으로 관객을 실망시키고 공연 문화를 병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 보편성 속에 우뚝 설 수 있는 작품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술인으로서 자기 성찰을 통한 인생관, 민족관, 역사관, 세계관을 구축하는 과정이 필수라고 전했다.

“우리 전통을 현대화해서 세계로 뻗어 나갈 만한 작품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우리 문화가 살아나려면 한극을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누군지 알고, 스스로를 일깨워야 해요. 

상금보다도 해당 작품을 여러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극장에서 스케일에 따라 열흘 내지는 보름 정도 공연을 올릴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에요. 현재도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자금을 모금하는 중입니다.”

더불어 양혜숙 이사장은 문화는 그 나라의 품격을 나타내는 자존심이자, 문화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전한다. 우리 사회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이자 그가 한극 운동을 펼치는 궁극적인 이유다. 

한국공연예술원 양혜숙 이사장./사진=김희연 기자

“나아가 한극 운동은 우리나라 문화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전 세계 국민들을 위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랜 식민지 생활을 하면서 자기 자신의 것들을 잃어버린 국민들의 정신도 일깨워 주는 일, 그걸 하기 위한 게 한극 운동이에요.”

양혜숙 이사장은 한극의 세계화를 위해선 우리 문화에 담긴 고귀한 정신을 이해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한다. 고유한 정신이 뒷받침된 무대는 자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민족정신에도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한극이 공연예술계에서 더욱 큰 결실을 이루게 되는 날을 희망하며 오늘도 한극을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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