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최용운 기자]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란 법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거나 집단적인 이기주의를 나타내는 상태나 행위를 의미한다.
임직원 불법 땅투기, 철근 누락 순살 아파트, 전관 업체 결탁 등 온갖 비리 온상지로 지목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반성은 커녕 국민께 내놓은 혁신안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LH는 지난 2021년 LH 사태 당시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를 하겠다며 국토교통부와 관계부처 합동 1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혁신안에는 전 직원의 재산등록 의무화 및 인원 감축을 통한 조직 슬림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뿐만 아니라 최근 1차 혁신안의 이행 현황을 묻는 황운하 의원실에 LH는 총 35개 혁신안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2건을 제외한 33개 과제 모두를 이행 완료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달랐다.
통상적으로 수장이 바뀌면 고인물이 흐를 것으로 변화를 예상하지만, LH의 경우 지난 2022년 11월 이한준 사장이 취임하면서 수장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아 ‘모럴 해저드’가 여전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LH는 임직원 건강검진비, 체력단련비용, 직원 우대 대출 및 현금성 복지포인트 지급을 위해 자체 예산에 더해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라 수익의 5% 이내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출연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 1차 혁신안에 이 같은 ‘복리후생비 축소 및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 제한’의 내용이 담기면서 원칙적으로는 오는 2025년까지 기금 출연이 제한되고 이로 인해 복리후생비 역시 축소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LH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311억원이던 LH의 임직원 복리후생비는 2023년 517억원으로 혁신안 발표 시점보다 무려 206억원 확대 편성됐다. 이는 2021년 대비 약 166% 증가한 수치다.
또한 직원 1인당 지급된 평균 금액 역시 2021년 317만원에서 지난해 576만원으로 259만원씩 추가 지급됐다. 이는 2021년과 비교해 약 181% 확대된 수치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LH 측은 “3년 연속 경영평가 부진으로 직원들의 생활고 해소 및 사기 진작을 위해 2026년 출연 예정인 복지기금을 앞당겨서 편성한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답변을 내놓았다.
오는 2026년부터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재출연하게 할지 여부에 대해 아직 국회나 주무부처에서 논의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2026년 기금 출연액은 2025년 수익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 LH가 임의로 추산해 예산을 무단 편성했다는 게 황운하 의원실 측 설명이다.
이에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국민께는 혁신안을 이행 완료했다고 거짓 답변하고 뒤에서는 없는 예산까지 임의 편성해 당겨쓰는 불법을 저질렀다”며 “내부 비리로 조직 해체까지 갈뻔한 LH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국민만 또다시 뒤통수 세게 맞은 격”이라고 지적했다.
황 원내대표는 이어 “1차 혁신안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LH가 후속안을 계속 내놓는다고 한들 이미 LH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이 났다”며 “자정 기능을 상실하고 자기 배 불리는 데 혈안이 된 LH는 경영진 책임을 넘어 조직 해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황운하 의원실은 올해 가을로 예정된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난 2021년 대두됐던 LH 해체설을 상기시기며, 이한준 LH 사장에게 이번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의하겠다고 예고했다.
한편, LH는 지난 6월 2023년 경영평가에서 보통(C)등급을 받았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미흡(D) 등급을 받았던 데 비해 한 등급 오른 것이다. 이는 지난 2022년 11월 취임한 이한준 LH 사장으로선 한 해 경영이 모두 평가된 첫 성적표인 셈이다.
앞서 LH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이 기간 경영평가 등급이 저조했던 데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일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 기관 신뢰가 저하되는 사건을 연달아 겪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