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60년 12월 18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생일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연세대학교 응용통계학과 설립 멤버인 윤기중 교수다.
4살 때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으로 이사했고, 대광국민학교에 입학했으며, 동문으로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김성한,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아들이자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이철우 등이 있다.
이후 중랑중학교에 입학하고, 서대문구 연희동으로 이사해 충암중학교로 전학했다. 충암중학교와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이른바 ‘충암파’가 형성됐다.
부친의 조언에 따라
원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부친의 조언으로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1980년 5월 8일 모의재판에서 판사로 신현확 전 국무총리에게 사형,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신현확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쿠데타 수괴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이 재판이 퍼지면서 보안사령부에서 근무하는 먼 친척이 집에 전화를 걸어 피신하라고 했고, 이에 강릉에 있는 외가 친척집으로 피신했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술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 9수 끝에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1994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8년 파견검사로 BBK 특검에 참여했고, 당시 특검은 이명박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2년 3월 김건희와 결혼을 했고, 6월 오마이뉴스는 윤석열이 장모와 관련된 사건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 때문에 내부 감찰을 받았다는 보도를 했다. 다만 감찰은 무혐의 종결됐다. 그해 7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 제1부 부장검사 자리에 올랐다.
2013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이 됐고,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됐다. 수사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을 압수수색하면서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을 흔들 정도로 적극적인 수사를 했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압수수색·체포 영장 청구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윤석열은 황교안이 부당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징역 1개월 처분을 받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가 있으나 국정원 수사 중 항명의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는 것과 장모 최은순과 관련된 사유로 징계를 받았다는 것 2가지로 축약된다.
대구고검으로
2014년 1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로 발령받았다. 이는 좌천성 인사이며 사실상 검사 옷을 벗으라는 인사였다.
그런데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수사가 진행되면서 특별검사 박영수로부터 수사팀장으로 지명됐다. 그러면서 사실상 옷을 벗어야 할 정도로 코너에 몰렸던 윤석열 당시 검사는 기사회생을 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되면서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에 사법농단에 대한 수사를 했으며 버닝썬 게이트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했다. 그리고 2019년 윤석열은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검찰총장에 임명된 후 곧바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 대한 수사를 개시했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에 대한 수사를 했다.
그러면서 국정감사에서 자신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면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21년 윤석열은 검찰총장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고, 그리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됐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올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직무정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