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이 내린 하나회
보안사가 통신망 장악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을 성공으로 이끈 또 하나의 원인은 국군보안사령부가 모든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모든 정보가 각 부대에 소속된 보안부대에 속속 전달됐고, 하나회 소속 인사들에게 보고가 됐다. 즉, 진압군이 어느 방향으로 어떤 식으로 진격하는지 등의 정보를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회 소속 인사들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게다가 특전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대통령 경호실 등 주요 부대의 대다수를 하나회가 장악하고 있었다. 즉, 진압군이 진압에 나서려고 해도 휘하 부대원들이 명령거부를 한 것이다. 여기에 진압군 수뇌부 역시 우왕좌왕했다. 그러면서 확전을 우려해 반란군에 굴복했다. 물론 장태완 사령관 등이 끝까지 저항을 하려고 했지만 역시 하나회에 의해 무력화되면서 좌절됐다. 진압군이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북한의 동향 때문이다. 우리나라 군사력이 북한의 군사력보다 우위에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즉,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우리 군사력이 북한의 군사력보다 뒤쳐졌다. 그런데 하나회가 전방의 부대까지 서울로 빼냈다는 것 자체는 진압군에게 부담이 된다. 만약 덩달아 전방 부대를 빼내서 반란군을 진압하려고 했다면 전방의 군사력이 비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진압군이 전방 부대를 빼내서 진압을 했다면 내전이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한 서울시민의 피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진압군은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전두환 하나회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역사적 단죄 제대로 못해
전두환과 노태우 등은 그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대통령을 역임했다. 그리고 하나회 소속 인사들은 모두 영전을 했다. 물론 김영삼 정부 들어서면서 12.12 군사반란 단되하는 재판이 진행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곧바로 사면이 되면서 12.12 군사반란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미완성으로 끝났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12.12 군사반란을 옹호하는 세력이 세상 밖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만약 제대로 된 역사적 단죄를 했다면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여론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