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4월 20일 신뢰는 거울과 같아 깨지면 회복할 수 없다.
[김진혁의 시사 인문학 365일] 4월 20일 신뢰는 거울과 같아 깨지면 회복할 수 없다.
  • 파이낸셜리뷰
  • 승인 2019.04.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뢰는 유리거울 같다. 한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하나가 될 수 없다.”

-스위스의 철학자 아미엘(1821∼1881)-

[파이낸셜리뷰] 일단 금이 간 유리는 아무리 깨진 조각을 잘 짜 맞추어도 원래대로 돌릴 수 없습니다. 신뢰도 마찬가지로 한번 잃은 것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진정한 신뢰를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신뢰하며 의심받을 짓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추석 물량이 밀려 부득이 야간에도 근무를 해야 하는 중소기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너스 줄 형편이 되지 않을 때 당신이 임원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는 리더십 유형의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1안, “회사로 인해 먹고 사는데 아무소리하지 말고 일해라,” 2안, “이번 일만 잘되면 나중에 보너스를 주겠다.” 3안, “네 얼굴 봐서 한 번만 봐 달라” 대부분 2안과 3안의 중간선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신뢰가 쌓여 있었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닙니까? 영국의 작가 러스킨은 ‘신뢰는 만인의 마음에 있어 유일한 모유이다; 신뢰는 이해보다 더 깊은 교제를 낳습니다.

독일 독재자 히틀러 (1889-1945) 출생.

독재자 히틀러도 1932년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36.8%의 득표율로 낙선지만 했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를 누른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이미 86세의 고령으로 그를 총리에 임명됐다.

그는 젊고 강력한 독일의 지도자로서 무너진 경제를 되살리고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잃어버린 조국 땅을 되찾고, 유럽을 포함한 러시아까지 무력으로 합병하는 것에 국민들은 열광하였다.

어려서부터 체질화된 광적인 반유대주의는 유대인 말살정책이 현실화 되었다.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아우토반이 건설되었고, 비틀 자동차가 생산되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 결과 자국을 옥죄던 베르사유 조약을 능멸하면서 군비를 증강해나갔다.

그는 불같은 아버지와 애지중지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낙제생이었다.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의 한 대목에 보면 “모든 점에서 히틀러의 길은 모범적인 경우다. 어떻게 민주주의 제도들을 서서히 무력화시키고 항복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지, 어떻게 국내에서나 국제무대에서 적들을 차례로 속여서 이길 수 있는지, 아무리 저항해도 소용이 없는 테러 체제를 선전과 폭력을 통해서 어떻게 건설하는지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폭력적인 지배자의 생애도 권력의 지점들을 거쳐서 마침내 진짜 파괴욕 속에서 퇴화하는 과정을 그처럼 완벽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런 과정은 히틀러의 상승과 몰락을 교과서적인 모범으로 만들고 있다.”

그는 자서전 [나의 투쟁]에 이렇게 쓴다. ‘독가스로 그 타락한 히브리 민족을 1만 2천명 내지 1만 5천 명 정도 만 죽일 수 있다면, 전선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된다고 해도 헛된 일은 아니다.’

아우슈비츠는 유대인들의 무덤이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참혹하였기에 결국 히틀러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그가 전쟁을 도발하면서 세웠던 목표는 거의 다 실패로 돌아갔다. 폐허가 된 독일. 세계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대신 전 영토와 경제적 기반, 국력, 독립, 도덕성마저도 잃어버렸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