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란 아프고 병든 자들에게 약을 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자이다. 그런데 이런 의사들은 세상에 너무도 많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사란 의료행위는 물론 가슴 속으로 환자의 병을 위로하고 위안을 주는 자이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의사들은 성직자의 품성 또한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성직자는 그들을 위해 총을 들려 하지 않으므로 이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나는 의사도 성직자도 아닌 혁명가만이 그들이 해야 할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 체 게바라 -
[파이낸셜리뷰]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다. 아르헨티나 출생의 쿠바 정치가·혁명가로 피델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혁명에 가담하였고 라틴아메리카 민중혁명을 위해 싸우다 볼리비아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현실의 안락과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죽어간 삶의 궤적을 남긴 이념과 국가를 떠나 전설의 혁명가로 남아 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사랑과 하나의 상징으로 남은 것은 인간 체 게바라의 삶 자체가 가진 준엄함과 숭고함 때문이다.
20세기 초 남미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체 게바라는 안락한 지위를 버렸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 앞에 누구보다 순정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엄격했던 사람이었다.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와 경제적 안정 속에 태어났지만 2살 무렵 극심한 폐렴을 앓은 탓에 평생 매우 중증의 천식을 지병으로 가지고 살았다.
스물다섯 살에 의학박사학위를 딴 후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체 게바라는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진보정권을 이루어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던 과테말라로 옮겨갔다. 페루에서 학생운동을 벌이다가 과테말라로 망명 온 3살 연상의 여성 혁명가 일다 가데아를 만나 결혼한다.
혁명만이 라틴아메리카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고 과테말라에서 혁명을 시작한다. 1954년 멕시코에서 망명 중이던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고 밤샘 대화를 통하여 혁명 동지로 거듭나게 된다. 그는 쿠바원정대가 되어 게릴라 전쟁을 도와 쿠바의 독재자 바띠스따(Fulgencio Batista)를 축출했고 그가 이끌었던 산타클라라 기지의 전투는 그 결정적인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스트로가 쿠바의 정권을 잡은 뒤, 체 게바라는 "쿠바의 두뇌"라고 불리고 산업부장관, 국립은행 총재들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1965년 그는 쿠바에서 사라진다. 그는 혁명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멈추지 않았고 다시 무기를 들고 혁명의 전선에 서게 된다. 볼리비아의 반군 지도자로 1966년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붙잡혀 1967년 10월 발레그란데(Vallegrande) 근처에서 총살되었다. 죽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알아두어라. 너는 지금 사람을 죽이고 있다’
오늘의 역사: 프리드리히 폰 쉴러(Friedrich von Schiller,1759~1805) 타계
독일의 시인, 독일의 질풍노도 문학운동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 군대의 엄격한 군율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품을 쓰기 위해 탈영을 감행하였고, 평생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불후의 드라마를 남겼다. 군의관으로 복무 중 쓴 ‘군도(群盜)’는 극장에서 상연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군도’는 격렬한 사회비판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 가득 차 있는 작품이다.
그는 독일적인 개성 해방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작으로 괴테와 더불어 독일 고전주의문학의 2대 거성으로 추앙받는다.
독일 고전주의문학의 위대한 두 시인 사이에 오갔던 ‘괴테·실러 왕복 서한 Briefe zwischen Goethe und Schiller’은 풍요롭고 순진하며 진지한 두 사람의 영혼의 기록이며, 또한 문예와 인생 문제를 둘러싼 두 사람의 대결과 전개의 귀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는 투병하면서 창작을 계속하여, 작품마다 새로운 수법을 구사했고 1805년 바이마르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