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이집트 피라미드하면 떠오르는 것이 많다. 피라미드를 혹자는 ‘무덤’이라고 규정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그 옛날에 어떤 건축기술로 만들었는지에 대한 미스터리가 가득한 것이 바로 이집트 피라미드다.
그리고 이집트 피라미드 하면 노예가 떠오르고, 관리·감독자가 채찍으로 노예들을 때리면서 파라미드를 만드는 그런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노예가 아닌 자유인
이같은 상상을 하게 된 것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이집트 쿠푸왕이 대피라미드를 건축할 때 노예 20만명을 동원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학자들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리·감독관이 피라미드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채찍질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다면 피라미드를 왜 자유인들이 건축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나일강이 범람했기 때문이다.
이집트 왕실은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대체 일거리를 제공해야 했다.
농사철에 왕실은 많은 양의 밀을 거둬들였다가 나일강이 범람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피라미드 노동력을 제공받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급료를 준 것이다.
실제로 피라미드에 있는 낙서들을 보면 ‘오늘은 돈 얼마 받았고, 생필품으로 뭐가 제공됐다’는 글들이 있다. 또한 감독관과 싸워서 며칠 동안 나가지 않았더니 마누라에게 바가지가 긁혀서 결국 나가게 됐다는 낙서도 발견됐다.
피라미드 근처에서 발견된 석판에는 노동자들의 출결 현황과 결근 사유 등이 적혀 있었다. 결근 사유에는 전날 과음으로 인한 숙취 였다는 것도 적혀 있는 것으로 볼 때 피라미드 노동자들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집트 왕 파라오의 입장에서 농사철에 세금을 곡물로 받았고, 이를 비축해 놓았다. 하지만 곡물은 곧바로 썩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유인들에게 곡물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피라미드를 건축한 것이다.
파업 기록까지
실제로 이집트 피라미드 관련 기록들을 살펴보면 만약 감독관이 급료로 빵과 맥주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파업을 할 수 있었다. 인류 최초 파업이 피라미드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집트 파업의 전통은 동로마제국까지 이어지면서 지역 총독들은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또한 피라미드 주변에 노동자들의 무덤이 발견됐다. 노동자들이 노예라면 무덤 자체를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비쳐볼 때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이 1930년대 세계대공황이 닥쳤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내놓았다. 뉴딜정책은 정부가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고, 그것을 통해 세계대공황을 미국은 극복했다.
그런 점에서 이집트 피라미드 공사는 이집트판 뉴딜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