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18년 3월 8일은 스페임 독감 첫 환자가 발생한 날이기도 하다. 스페인 독감 또는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은 1918년에 발생했던 20세기 들어서 가장 크게 유행하고 치명률이 높았던 전염병이다.
감기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다가 폐렴으로 발전하는가 싶더니 환자의 피부에서 산소가 빠져나가면서 검은빛으로 변해 죽어가는 병이다.
기원에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병사들이 귀향하기 위해 모여 있던 캠프에서 발병했을 것으로 여겨지며 ‘3일 열병’이라는 이름처럼 짧은 증상 기간 이후 단순한 감기 증상을 가지기 때문에 귀향한 병사들이 각지에 전파함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됐다.
스페인 독감, 사실상 미국 독감
기록에 의하면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가 최초, 3월 8일 캔자스 퍽스톤 기지, 3월 11일 미국 각 부대에서 발병자가 발생했다.
따라서 스페인 독감이 아니라 미국 독감이라고 불러야 했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으로 불리었던 것은 전시에 적국에 이로운 상황이 알려지지 않도록 전시 검열을 했는데 스페인은 제1차 세게대전 참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즉, 스페인이 언론에서 먼저 이 문제를 다뤘다고 해서 ‘스페인 독감’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니 스페인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일설에 의하면 유럽 발원설, 중국 발원설 등이 있지만 최초 보고는 미군 기지이다.
1차 유행에 이어 2차 유행으로
1918년 봄 1차 유행이 있었고, 그해 가을~겨울에 걸쳐 2차 유행이 된다. 2차 유행에서 고병원성으로 옮겨가게 된다.
1918년 8월 프랑스 브레스트,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 미국의 메사추세스주 보스톤에서 스페인 독감이 출현했다. 2차 대유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에 세계적으로 적게는 2천만명, 많게는 8천만명 정도가 독감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세계 인구가 16억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 1/30 정도가 독감으로 사망하게 된 것이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기록된 나라는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었다.
스페인 독감은 주로 젊은 인구의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특히 20~45세 사망자가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3.1 만세운동의 원인???
스페인 독감의 세계 평균 사망률이 3~5%이지만 당시 일본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는 무오년 독감 혹은 서반아 감기라고 불렀다.
조선총독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759만명 가운데 약 16.3%인 288만 4천명이 스페인 독감 환자가 되었고 중 14만 명이 사망했다. 사망률은 전체 인구 수 대비 1.8%이다.
어쨌든 전세계 인구 약 1~3% 죽었다. 스페인 독감은 걸린지 2~3일 만에 사망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사람이 1천500만명이었는데 스페인 독감이 1천700~5천만명의 목숨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전염병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 독감이 대유행을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서둘러 매듭지어졌고, 평화 조약이 체결됐다.
역사학계 일각에서는 당시 일본식민지였던 우리나라 국민이 조선총독부의 방역체계가 무능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어나면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그 정도라 스페인 독감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방역체계는 너무 무능했다. 조선땅에 있는 우리나라 백성들이 스페인 독감에 의해 쓰러지면서 그에 분노한 조선 백성들이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 3.1 만세운동이라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