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됐다.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의 득표 격차가 역대 최소 격차를 보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0일 오전 6시 현재 개표가 99.90% 완료된 가운데 윤 당선인은 1천638만 2천124표를, 이 후보는 1천613만 1천312표를 최종 득표했다.
윤 당선인과 이 후보의 표차는 25만 812표로 집계됐고, 격차는 0.74%포인트였다. 두 사람의 표 격차가 1%포인트 내로 결과가 나오면서 87년 체제 이후 가장 적은 표차이를 보였다.
김대중-이회창 대전 때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가장 적은 표차로 당락이 갈린 사례는 1997년 15대 대선이었다.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는 1천32만 6천275표를 확보해 993만 5천718표를 얻은 2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39만 557표 차이로 이겼다.
5년 뒤 치러진 대선도 비교적 근소한 표차로 당선인이 결정됐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57만 980표차로 이회창 후보를 상대로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에 윤 후보가 이 후보를 0.74%포인트 격차로 승리하면서 대선에서 가장 적은 표차로 승리한 사례가 됐다.
문세표 전설은
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단 ‘3표’차이를 보인 사례가 있었다. 당시 경기도 광주군에는 박혁규 한나라당 후보, 문학진 새천년민주당 후보, 이상윤 무소속 후보가 3강 구도를 형성했다.
유권자 8만 7천105명 중 4만 9천420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최종 투표율은 56.7%였다. 당시 박 후보는 1만 6천675표(34.15%)를 얻었다. 그런데 문학진 후보가 1만 6천672표(34.14%)를 기록했다.
문 후보가 박 후보에 단 ‘3표’차이로 패배한 것이다. 득표율은 불과 0.01% 포인트 차이였다. 그러다보니 투표에 불참한 3만 8천명의 유권자들은 “그때 투표에 참여했더라면”이라면서 술자리 안주로 삼았다.
그리고 정치인 문학진에 붙여진 별명은 ‘문세표’였다. 오늘날에도 ‘문세표’는 유명한 사례로 전설로 남아 있다.
단 1표로 승패가 갈렸던 선거
지방선거로 내려갈수록 표 격차는 더욱 극심해진다. 2008년 강원도 고성군수 보궐선거에서 1표 차로 승패가 갈렸다. 당초 윤승근 후보와 황종국 후보는 모두 똑같이 4597표를 얻었지만, 재검표를 거친 결과 1표 차이로 황 후보가 당선됐다.
또 충주에서는 지난 2002년 한 표 차 낙마한 모 시의원 후보가 4년 뒤 한 표 차이로 당선되기도 했다.
2006년에도 충주시의원에 나선 우종섭 후보와 최병오 후보는 같은 수의 득표를 했고, 재검표 결과 두 표 차이로 최 후보가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