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없었던 점심
점심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없었다.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개념이었기 때문에 ‘어원’ 자체가 중국에서 넘어온 말이다. ‘아침’ ‘저녁’은 순수 우리말이지만 ‘점심’은 한자로 돼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아침과 저녁 사이에 마음의 점을 찍는다고 해서 ‘점심’이라고 표현했고, 주로 만두 등을 먹었다. 이런 이유로 광둥어로 점심을 딤섬이라고 불렀고, 오늘날 ‘딤섬’이 바로 점심이라는 말이다. 딤섬은 특정 만두 요리가 아니라 점심에 먹던 음식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오늘날 만두 요리로 굳어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침과 저녁만 먹었다. 다만 왕이나 귀족 등은 점심을 먹었고, 백성들은 아침과 저녁만 먹었다. 다만 아침과 저녁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에 허기가 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참이 있었다. 즉, 아침과 저녁 두끼만 먹었고, 그 사이에 먹는 간식을 ‘새참’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가 되면서 직장인들이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먹고, 주로 점심이나 저녁을 만족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이는 바로 비만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왜냐하면 음식이 칼로리로 만들어져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나면 하루종일 힘든 일을 해도 칼로리 소비를 할 수 있지만 점심이나 저녁을 든든히 먹으면 시간이 지난 후에 칼로리로 전환된다. 그때는 이미 육체적 노동이 끝나고 휴식 상태에 들어가기 때문에 칼로리가 남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곧 지방의 형태로 바뀌어서 체내에 저장하게 된다.도시락의 혁명, 분홍 소시지
점심하면 따라다니는 것이 바로 도시락이다. 도시락은 과거에서부터 존재했던 개념이다. 신라시대 유물 중에는 찬합이라고 불리는 유물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벤또’라고 불렀는데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가 과거 문헌을 연구하면서 ‘도슭’이라는 단어를 주목하면서 ‘도시락’이라는 단어가 오늘날까지 쓰이게 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도슬박 밥과 표주박 물로’라는 등의 언론보도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도시락은 유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에도 도시락은 이어져 왔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주로 밥과 김치 등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밥과 고추장 등이었다. 주로 양은도시락을 이용했는데 겨울철에는 난로 주변에 양은도시락을 놓거나 아예 난로 위에 양은도시락을 올려놓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태워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1963년 평화상사가 내놓은 음식에 모든 엄마들이 환호를 했다. 바로 분홍 소시지라고 불리는 혼합 소시지이다. 당시 녹말 40%에 연육 35%로 만든 혼합 소시지는 도시락 걱정을 하는 엄마들에게는 혁명 같은 반찬이었다. 1980년대 이전까지 엄마들은 분홍 소시지를 얇게 썰어서 계란물을 입힌 후 구워낸 것을 도시락 반찬으로 삼았다. 그 이유는 육류가 부족했던 서민의 밥상에 같은 부피에 고기의 10분의 1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1980년대 들어서서 독일식 소시지 등등이 점차 보급화되면서 분홍소시지가 점차 사라지게 됐고, 2000년대 들어서 급식을 하는 학교가 늘어나면서 도시락의 최강자 자리를 분홍소시지는 내려놓게 됐다.보온도시락에서 급식으로
1980년대에는 가계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면서 보온도시락이 보급됐다. 그러면서 밥과 국과 반찬으로 이뤄진 도시락 형태가 나타났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급식이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학교나 대기업의 경우 직장 내에서 급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워홈, CJ프레시웨이, 현대그린푸드와 같은 단체급식 업체가 생겨났고, 2020년 급식시장 규모가 4조 3천억원이었고, 올해는 5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물가가 하루가 멀다하고 상승을 하면서 직장인들의 외식 부담이 늘어나면서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