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더불어민주당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97세대(90학번·70년대생)으로 당 대표를 교체해야 한다는 바람이다.
세대교체론은 이재명 의원이나 전해철·홍영표 의원 등이 당 대표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새로운 인물이 당을 이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나오면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는 리더십 변화를 의미한다. 국민의힘이 36세 젊은 당 대표를 앉히면서 그에 따라 쇄신의 바람이 불었고, 결국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런 의미로 97세대 교체론이 민주당에 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1970년대 있었던 40대 기수론과 같은 바람이 일어날지 여부다. 당시 신민당은 위기에 있었는데 40대 기수론으로 그 위기를 돌파했다.
무력했던 야당 신민당
신민당은 박정희 정권 들어서서 무력한 야당의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신민당 지지자들도 상당히 지쳐있었다.
그런데 1969년 11월 8일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이 남산 외교구락부 건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나이는 42세였다.
뒤이어 1970년 1월 24일 김대중(45), 2월 12일 이철승(48) 의원이 각각 출마 선언을 했다. 그야말로 센세이션했다. 당시 대선 출마를 하기 위해서는 지금도 그러했지만 나이가 좀 지긋한 사람들이 했었다.
그런데 젊은 정치인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그야말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신민당 지도부는 “젖비린내 나는”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범진산계 “40대 후보에게 맡길 수 없다”
67년 대선 당시 윤보선·이범석·백낙준·유진오 등 4자 회담을 통해 후보를 결정했다. 그것이 안된다면 당 간부들로 이뤄진 후보조정위원회가 대선 후보를 선출했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밀실야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40대 정치인들이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했으니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신들끼리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당시 당 지도부는 당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려면 명망 있는 분을 단독 추대하는 것이 좋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들끼리 야당 대선 후보를 임명하고, 야당 지지자들은 그냥 따라오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당내에서는 40대 기수론에 대해 환호를 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으로 투표를 해서 야당 대선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는 희열 때문이었다.
당 지도부는 초반에는 격렬 반대했지만 결국 포기를 했고, 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 투표에서 이철승의 지지를 입은 김대중 458표, 김영삼 410표로 김대중이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된다.
김영삼은 결과에 승복하고 대선 동안 김대중의 선거운동에 적극 나섰다.
야당의 새로운 바람 일으켜
당시 신민당 후보 경선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40대 대통령 후보를 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당을 이끌어 가는 주역이 50~60대 원로들이라는 국민적 인식을 단번에 날려버리는 그런 일이었다.
무엇보다 더 신선했던 것은 대선 후보를 대의원이지만 당원들의 손으로 선출한다는 것이었다. 원로들이 권력을 독점하던 체제에서 경쟁으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계파 간 협상을 통해 정치를 해왔다는 점에서 엄청난 변화이다.
그것은 시대정신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오늘날 역사학자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