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준 칼럼] 한국경제발전 70년(3) : 국가재건과 공업화
[정인준 칼럼] 한국경제발전 70년(3) : 국가재건과 공업화
  • 정인준
  • 승인 2022.07.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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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0.6.21.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한민국을 만든 이슈’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 한국 국민들은 한국 전쟁 후 지난 70년간 대한민국이 성취한 가장 큰 업적으로 경제 분야에서는 ‘IMF 외환위기 극복’,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꼽았다. 산업발전분야에서는 ‘삼성의 반도체 진출’, ‘포항제철 설립’을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고, 사회부문에서는 ‘국민건강보험’, ‘초·중등 무상교육’을 꼽았으며,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83.9%에 달했다. 네덜란드 경제사학자들이 만든 경제성장과 소득에 관한 data base에 근거해 작성한 1인당 GDP 증가율 자료(Maddison-Project)에 따르면 지난 70년간 한국과 대만의 1인당 GDP 증가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한국경제발전 70년은 싱가포르, 대만과 함께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이 성공한 사례이다. 대만이 ‘독립국’ 대우를 못 받기 때문에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국가재건과 공업화의 시도(1945-1960)

해방 이후 미군정(1945-1948)과 이승만 초대 정부(1948-1960) 및 4.19혁명(1960) 등 1945-1960년 시기는 정치적 혼란과 격변의 시기였다. 8.15 해방과 함께 분단된 한반도는 북한에 중공업시설과 전력시설이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한국은 농업 및 경공업 중심으로 북한의 전력송전 중단(1948.5.14.)으로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기도 했다. 북한의 남침에 의한 6.25전쟁(1950-1953)의 폐허 위에서 한국경제는 1953-1960년 간 연평균 5.3%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식량부족으로 미국의 잉여농산물원조에 의존하던 이승만 정부의 경제·무역정책은 원조경제와 수입대체공업화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1950년 대 수입품은 휘발유, 원면 등 섬유산업 중간재, 밀과 설탕 등 소비재와 섬유기계와 발전기 등 자본재로 광물·수산물이 대부분인 수출의 8-10배 규모였고 무역수지 적자는 GDP의 10%를 상회했다. 1953-1962년간 미국 무상원조는 국내 GDP의 14.2%로 대규모였으며, 미국의 대한 원조는 해방이후 1969년 말 까지 무상원조 44억$, 유상원조 4억$로 한국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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