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아일랜드 대기근
[역사속 경제리뷰] 아일랜드 대기근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9.13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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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블랙47 한 장면.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블랙47 한 장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를 하면서 전세계가 애도를 하고 있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애도를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한 것이 800년이고, 200년 가까이 병합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847~1852년 이뤄진 아일랜드 대기근이 반영 감정을 부추겼다.

영국 정부 수탈로 아일랜드에는 감자 이외에 먹을 것이 없었던 가운데 감자가 병들어버렸다. 이에 아일랜드 구제방안이 영국 의회에 꾸준하게 제기됐지만 상원과 하원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하면서 참사가 일어났다.

결국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국의 식민지로 이민을 가게 됐고, 식민지에 반영 감정을 심어주게 되면서 영국 연방 국가가 협소해지게 되는 원인이 됐다.

영국 성공회 개종 강요

아일랜드는 켈트족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2세 주도하에 영국의 침입이 계속되면서 점차 식민지배가 됐다.

이후 16세기 이후 영국의 국교 성공회가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도 개종을 강요했다. 카톨릭을 믿었던 아일랜드 사람들은 저항을 했고, 이에 엘리자베스 1세부터 올리버 크롬웰까지 영국 지배층은 아일랜드 사람들의 저항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후 아일랜드 자영농들의 토지를 몰수했고, 영국으로부터 넘어온 영국 사람들에게 토지를 나눠줬다. 그러면서 아일랜드 사람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소작농들은 먹고 살기 위해 감자를 대량으로 재배했다. 1846년 아일랜드 성인 남자는 하루 6.35kg의 감자를 소비했다. 전세계에서 대식가로 유명한 조선 백성들의 밥 한 공기가 690g인 점을 감안하면 아일랜드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감자를 먹었던 것이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블랙47 한 장면.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블랙47 한 장면.

미국에서 시작한 감자 역병

1842년 미국 동부의 감자 농장에 대규모 역병이 발병했다. 이 역병은 북미 전역으로 확산하고 배를 통해 유럽으로 번졌다.

1845년 여름 아일랜드는 비가 잦으면서 작황이 엉망이었고, 감자 역병이 돌았다. 영국은 발 빠르게 미국과 영국 본토에 정부가 직접 밀을 공급했다. 이로써 1845년 겨울 동안 70만명을 구제했다.

1846년에는 곡물법을 폐기하여 밀의 수입을 자유화함으로서 식량의 유통량을 늘리는 한편 간접적으로 식량의 가격을 조정하려 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소작농들은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감자 역병으로 농사를 망치면서 아일랜드는 식량난에 휩싸였다.

물론 곡물법이 폐기돼 밀의 수입이 자유로워졌지만 교통이 불편한 것은 둘째치고 소작농들에게는 수입밀은 그림의 떡이었다.

여기에 영국 정부가 자유당이 집권하면서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내세웠고, 아일랜드 대기근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블랙47 한 장면.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블랙47 한 장면.

아일랜드의 몰락

아일랜드 대기근은 소작농들이 몰락하니 지주도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에서의 경제활동이 사실상 힘들게 된 것이다.

물론 자유당 정권이 뒤늦게 참상을 이해하고 무료 식량 공급을 시작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 비용을 토지 소유주들이 부담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일랜드 토지 소유주 즉 지주들은 소작농들을 쫓아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이제는 헐값에 다른 사람들에게 토지를 떠넘기기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아일랜드 사람들의 토지가 어느날 갑자기 영국 사람 소유로 넘어가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아일랜드 지주들도 몰락한 것이다.

결국 대기근 이후 아일랜드 사람들은 고국을 뒤로 한 채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으로 이민을 가게 됐다.

현재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숫자는 3천여만명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아일랜드 인구의 7배 넘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반영 감정이 클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에서 영국군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미국으로 이주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페니언 민병대’를 만들어 1866년부터 1886년까지 20년 동안 영국 영토였던 캐나다로 쳐들어가 영국군을 공격했다. 미국 역시 잠재적 적국인 영국이기 때문에 눈 감아줬다. 그리고 캐나다가 통일 연방을 결성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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