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미일 동해 군사합동훈련에 대해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11일 구한말 조선 패망 과정을 설명하면서 반박했다.
정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면서 “1895년 동학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고종이 청나라를 불러들이자, 일본군은 천진조약을 빌미로 한반도로 신속 진공했다‘곧바로 고종이 거처하는 경복궁을 점령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일본군은 조선 관군과 함께 동학 농민 혁명군을 진압했다. 수십만의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의 기관단총에 학살당한 동학 농민전쟁 최후의 결전장이 내 고향 공주 우금치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종은 일본에 러시아에 미국에 차례로 손을 내밀었다. 1905년에는 조선을 찾은 테오도르 루즈벨트의 딸을 공주처럼 맞아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녀와 함께 일본 그리고 조선을 방문했던 미 육군 장관 테프트는 일본 총리 가스라 다로와 ‘가스라 테프트 밀약’을 체결했다.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자고”고 이야기했다.
정 위원장은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 백성의 고혈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다가 망했다. 일본은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쓰러져가는 조선 왕조를 집어삼켰다. 조선은 자신을 지킬 힘이 없었다. 구한말의 사정은 그러했다”고 말했다.
톈진조약이란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주둔하게 된다. 그러면서 청나라가 내정간섭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1884년 청프전쟁이 발발하면서 조선에 주둔 중인 청군 일부가 철수하면서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 세력은 일본이 지원을 받아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갑신정변은 결국 명성왕후 민씨의 요구로 청군이 다시 국내에 들어오면서 일본군이 소극적 대처를 하면서 청군에 의해 진압을 받는다.
이후 청군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면서 청나라와 일본은 1885년 4월 톈진에서 조약을 맺는데 톈진조약이다.
청나라 이홍장과 일본 이토 히로부미가 체결한 조약으로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가 조선반도에서 철수하고, 일본은 조선에 대해 청과 동일한 파병권을 얻는다는 내용의 조약이었다.
동학농민운동 발발하자
동학농민운동이 발발하자 동학농민군이 중앙군을 상대로 승리를 하고 전주성까지 점령하게 되면서 조정은 청군에게 진압요청을 하게 됐고, 청군이 조선땅을 밟게 된다.
이에 일본군은 톈진조약을 빌미로 조선땅에 들어오게 된다. 당시 청군은 아산만에 상륙했지만 일본군은 제물포로 상륙했다.
일본군은 인천에 상륙한 5월 6일로부터 이틀뒤인 5월 8일. 조정은 ‘농민군을 진압하였으니 외국군은 철수하라’는 명분을 위해 농민군과의 전주 화약을 체결했지만 때는 늦어 조선을 노리던 청과 일본 양국이 청일전쟁을 일으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