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50년 12월 15일은 흥남철수작전이 개시된 날이다. 이날부터 26일까지 흥남에서 미군 10군단, 대한민국 국군 1군단 그리고 피난민 10만여명이 철수한 작전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일어난 작전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별칭까지 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의 철수작전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전이기도 하고, 부산의 국제시장이 탄생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북진통일 눈앞에 두고도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경상도로 그 영토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9.28 서울 수복을 한 후 10월 1일 휴전선(휴전선을 넘는 것을 기념해서 국군의 날이 됐다)을 넘어 북진을 했다. 그리고 압록강까지 진추했지만 중공군이 참전을 하면서 서부전선을 담당햇던 미8군이 패배를 했다.
그러자 동부전선을 담당했던 미10군단은 함흥-흥남지역으로 후퇴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에 포위되면서 10군단 전체가 포위 섬멸 위협까지 당하면서 유엔군은 12월 8일 흥남철수 명령을 내렸다.
12월 15일 미 제1해병사단을 시작으로 미10군단 전 병력이 흥남으로 집결, 해상을 통해 부산으로 철수를 시작했다.
육로가 아닌 흥남을 통해 해로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미 중공군이 12월 9일 원산까지 진출하면서 육로가 막혔기 때문이다.
원래 군대만 철수하기로
흥남철수는 원래 군대만 철수할 계획이었다. 이에 물자를 수송하는 수송선과 군인을 수송하는 수송선 등이 투입됐다.
하지만 1군단장 김백일 장군 등 한국군 지휘관들은 피난민을 버리고 갈 바에는 차라리 걸어서 후퇴하겠다고 반발했다.
여기에 미10군단 사령관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 통역을 담당했던 현봉학(당시 20세), 해군 군수 참모로 상륙을 담당했던 에드워드 포니 대령이 알본드 장군을 설득했다. 이에 현봉학 박사는 2000년 4월과 2013년 7월 호국 인물로 지정되고, 2014년 12월 국가보훈처에서 이달의 6.25 전쟁 영웅으로 뽑혔다.
포니 대령은 2018년 12월, 알몬드 장군은 2020년 9월, 라루 선장은 동년 12월의 6.25 전쟁영웅에 선정됐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록
그중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물자를 수송하는 수송선이었다. 적재한 화물 등으로 인해 피난민들을 무시하고 부산으로 가도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레너드 라루 선장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태울 수 있는 만큼 피난민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에 1만 4천여명의 피난민과 경호를 위한 17명의 육군 헌병이 승선하면서 흥남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고 24일 무사히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하선이 거부되면서 거제도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비좁은 배에서 5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그러면서 기네스북에 ‘단일 선박으로서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로 등재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수송선인 온양호와 호위 전투함이 흥남을 떠난 날짜는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리고 미처 배에 싣지 못한 여러 물자는 중공군에게 넘겨주지 않기 위해 12월 24일 마지막 배가 흥남을 벗어나는 순간 모두 폭파시켜버렸다.
대중문화에 영향 끼친 철수
흥남철수는 대중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가 대표적이다. 한국전쟁을 이야기할 때 배경음악으로도 깔렸다.
김동리의 소설 흥남철수는 흥남 철수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로,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인간애가 어떻게 생기는지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국제시장이 주목을 받았다. 흥남철수 장면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시 현봉학 박사, 알몬드 장군 등의 대화 장면이나 흥남부두가 철수 이후 폭파되는 장면 등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