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쓰여졌으며 간혹 정사를 비롯한 그 외 자료의 내용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파이낸셜리뷰=전완수 기자] 최근 일명 ‘바지 사장’을 앞세워 불법으로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경유를 무려 90억 원어치나 무자료로 거래한 혐의를 받는 일당 14명이 재판에 넘겨져 화제가 됐다. 세금계산서도 없이 거래한 것이다.
이들은 재작년부터 최근까지도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명의를 빌려 주유소 6개를 불법으로 운영해왔다.
거기다 명의를 빌려줬던 바지사장들은 대출금과 밀린 세금 등을 떠안아 각각 2억 원가량의 빚을 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바지사장을 앞세우고 뒤에서 이득을 취하는 경우는 예로부터 종종 있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삼국지 속에서도 등장하는데, 바로 헌제를 앞세워서 이득을 취한 조조의 경우이다.
가장 불행한 황제
헌제는 죽은 황제인 영제의 후궁 왕미인이 낳은 아들이었다. 그는 그 특유의 기개와 대담함을 동탁에게 인정받고 당시 실세였던 동탁에 의해 황제로 옹립된다. 자신의 형을 폐위시키고 말이다.
비록 황제에 즉위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모든 권력은 동탁이 가지고 있었기에 어린 헌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동탁이 토벌군을 피해 낙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할 때도 헌제는 한나라 400년의 역사가 담긴 자신의 고향이 불타는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볼 뿐이었다.
이후 동탁이 여포의 손에 죽으면서 이각, 곽사와 같은 도적때나 다름없는 장수들이 실권을 잡아버리고 황제를 우롱한다. 헌제에게 올라갈 음식을 썩은 재료로 만들기도 했다. 이 불행한 황제는 그런 고역들을 견디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웅일까 역적일까
숨을 죽이며 때를 노리던 헌제는 이각과 곽사가 서로 권력다툼을 하기 시작하자 몸을 움직였다. 바로 조조를 부르는 것.
조조는 마치 백마 탄 왕자 님처럼 헌제 앞에 등장해 이각, 곽사 무리를 깔끔하게 소탕해버렸다. 이후 헌제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해주고 어느 정도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조조 또한 동탁, 이각, 곽사 등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탐했던 것.
그저 그런 군웅 수준의 세력을 가지고 있던 조조에게 황실의 보호자라는 엄청난 명분을 제공해 버렸을 뿐이었다.
조조는 이후 동탁이 낙양을 버리고 천도했듯이 스스로 사공이라는 최고 관직을 차지하고 수도를 조조 자신의 본거지인 허현으로 옮긴다. 이후 이 허현은 바로 그 허도로 불리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조조는 황제를 앞세워 온갖 일들을 벌였고 결국 중국 대륙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엄청난 일을 달성하게 된다. 헌제의 한나라 사람으로서가 아닌 자신의 위나라 사람으로서 말이다.
물론 조조는 동탁, 이각, 곽사처럼 백성을 외면하고 자신의 탐욕만을 채운 것은 아니다. 그는 백성들의 목소리에 어느정도는 귀를 기울였으며 민심을 확인할 줄 알았다. 때문에 단순한 역적들과는 달랐던 조조는 그 평가가 명백히 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바지사장
바지사장은 특정 조직에서 겉으로는 리더, 혹은 가장 높은 지위의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세가 따로 존재하며 그 자신은 결국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를 말한다. 비슷한 말로는 허수아비, 꼭두각시, 얼굴마담 등이 있다.
바지사장이 생기는 이유는 조직에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원천이 직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단순 직위만 볼 것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야 하며, 보통의 경우에는 직위에 따라 바로 그 입지가 따라오긴 한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낙하산, 인맥을 통해서 등의 불건전한 이유로 직위를 확보하게 되면 이러한 법칙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혹은 아예 처음부터 고의로 어떤 한 사람을 높은 직위에 오르게 해서 총알받이로 쓰려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