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9월 12일 마라톤 전투 발발
[역사속 오늘리뷰] 9월 12일 마라톤 전투 발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9.12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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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기원전 490년 9월 12일은 마라톤 전투가 발발한 날이다. 페르시아 제국 다리우스 1세의 1차 그리스 원정으로 아테네 연합군이 마라톤 평원에서 맞붙은 전투이다. 그리스군이 최초로 페르시아군과 야전에서 싸워 이긴 전투이다. 오늘날 스포츠 경기 마라톤의 ‘명칭’에 대한 기원이 되기도 했다. 다만 ‘명칭’만 따왔을 뿐이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전설’에서 기원한 것은 아니다.

30kg 중무장에 30km를 3시간에 주파

이오니아 반란 당시 아테네가 개입을 하면서 다리우스 대왕은 그리스를 응징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사절단을 그리스 각지로 보내서 복종의 의미로 ‘흙’과 ‘물’을 보내라고 요구했지만 아테네는 거절했다. 이에 다리우스 대왕은 원정군을 보냈는데 9월 1일 마라톤 지역에 상륙한다. 아테네는 스파르타로 구원을 요청했지만 스파르타는 축제의 이유로 15일이 지나야 출정할 수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이에 아테네는 마라톤 평야에 먼저 도달해서 다리우스 군대를 맞이한다. 다만 9월 11일까지 양군은 마라톤 평야에서 대치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페르시아군은 11일 일부 병력을 함선에 태워 아테네 도시로 진공할 계획을 세우고, 아테네 연합군은 그것을 간파했다. 이때 아테네 연합군은 마라톤 평야에 주둔한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르고 아테네로 행군해서 바닷길로 오는 페르시아 군대를 맞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결국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 군대가 전멸당하자 아테네 군대는 서둘러 아네테로 돌아왔다. 당시 30kg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 30km 떨어진 아테네까지 3시간 만에 주파했다. 함대를 통해 바닷길로 아테네까지 왔던 페르시아 군대는 아테네 군대가 있을 것을 보고 포기하고 철수했다.

마라톤 전설의 진실은

오늘날 스포츠 경기 마라톤이 여기서 기원이 됐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전설은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전령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가 마라톤에서 쉬지않고 아테네까지 달려서 승전보를 전한 후 숨졌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기리기 위해 마라톤 경기가 유래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이디피데스’는 아테네에서 스파르타에게 지원을 요청했던 전령으로 죽지 않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천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 올림픽을 만들 때 지인 중 한 명인 프랑스인 문헌학자 미셸 브헤알이 당시 젊은이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를 주인공으로 해서 감동적인 스토리를 만든 것이다. 오히려 마라톤 전투에서 승리한 아테네 군인들이 30kg 중무장 한 채 30km의 거리를 3시간에 주파했다는 것이 오히려 마라톤 경기의 취지에 부합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평화의 상징인 올림픽 경기이기 때문에 전투에서 따온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 때문에 페이디피데스 전설을 만든 것이다.

42.195km는

마라톤 평야에서 아테네까지의 거리가 42.195km이기 때문에 마라톤 경기의 거리가 됐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마라톤 평야에서 아테네까지는 36.75km이다. 42.195km는 1908년 런던올림픽 당시 윈저성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26마일(41.843km)였는데 왕족들이 관람하는 로열박스 밑에 두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스타디움 구조상 입구에서 로열박스 밑으로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로열박스 대각선에서 들어와 시계방향으로 뛰는 부분이 385야드(352m)가 추가됐다. 그러면서 42.195km가 정례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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