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다방
[역사속 경제리뷰] 다방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10.2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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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다방은 ‘차’를 마시는 곳을 말한다. 하지만 주로 파는 음료는 ‘차’보다는 ‘커피’이다. 그것도 ‘인스턴트 커피’이다. 여기에 생강차, 쌍화차, 율무차 등의 음료를 판매한다.

다만 오늘날 커피전문점 등에서 파는 음료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방은 한 시대를 풍미했고,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했다.

신라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다방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신라시대에도 다도실이 존재했고, 고려에는 다점(茶店)이 있었다. 신라와 고려는 불교국가이기 때문에 ‘차(茶)’를 즐겨 마셨다. 조선시대에도 다방이 설치됐다. 하지만 조선시대 다방은 귀한 사람에게 차를 대접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방이라는 것은 1902년 서울 정동 ‘손탁호텔’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당시 ‘끽다점’(喫茶店)이라고 해서 우후죽순 다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문인들이나 예술가들이 다방에 모여 시국을 이야기하거나 예술을 논하면서 다방이 유명해졌다.

해망 이후 1950년대 명동 일대의 다방은 문인들의 천국이었다. 그것은 다방 주인이 문인들에게 배려를 많이 해줬기 때문이다. 다방 주인들은 문인들에게 시계나 신분증 등을 받아서 외상을 해줬다. 하지만 문인들에게 외상값을 돌려받은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문인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방은 대학가로

1950년대 다방은 주로 문인들의 쉼터였지만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학가 중심으로 다방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다방에는 음악감상실이 들어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학림다방’ ‘독수리 다방’ 등이다.

대학가에 다방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다방은 본격적인 시국을 논하는 장소가 됐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지나오면서 다방에 대학생들이 모여 시국을 논의했고, 행동으로 옮겼다. 이런 이유로 운동권 학생들이 자주가는 장소 중 하나가 다방이 됐다.

그런 다방이 1980년대 중반 카페 문화가 전파되고, 패스트푸드 체인점 등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점차 퇴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까지만 해도 다방은 약속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상호가 ‘약속다방’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점차 인스턴트 커피 애호가 줄어들고, 원두커피 애호가 증가하면서 그에 따라 카페 문화가 점차 정착되면서 다방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커피에 계란 노른자

아침에 다방을 방문하면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준다. 이는 빈속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니, 속 쓰리지 말라는 다방 주인의 배려이기도 하다.

또한 1950년대 문인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밥을 굶는 것이 일쑤였다. 즉, 하루종일 있어도 단백질 섭취가 쉽지 않은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방 주인의 배려로 계란 노른자를 커피에 띄워 문인들의 단백질 보충을 해준 것이 오늘날 ‘커피에 계란 노른자’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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