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출발 제주발 여객선, 1박2일 일정이 2박3일로... 제주 사람에겐 불리
- 낙조에 맞춰 운항하나? 선상에서 분위기 잡을 땐 제주막걸리가 최고
- 낙조에 맞춰 운항하나? 선상에서 분위기 잡을 땐 제주막걸리가 최고
노마드고흥 주민 여행기획단
제주에 산 지 일 년 반, 가끔 여행 취재를 위 육지로 올라가곤 한다. 열에 일고여덟 번은 비행기를 이용하지만, 남도나 섬을 여행하고 돌아올 때면 배를 탄다. 지난 두 달간은 유난히 육지 나들이가 많았다. 그중 가장 묵직했던 일은 ‘고흥문화도시센터’에서 주관하는 노마드고흥 주민 여행기획단의 멘토 역할이었다. 그 때문에 매주 한 번씩 배를 타고 고흥으로 올라가 반원들을 만나고 여행을 이어갔다.여객선 아리안호
가끔씩 난 소심함을 느끼곤 해
여행자들의 대부분은 3등 객실을 이용한다. 매표창구에서도 신분증과 카드를 내밀면 차량 동반 여부만 체크할 뿐, 객실 등급에 대한 질문은 없다. ‘아리온’호에는 3개의 3등 객실이 있으며 모두가 바닥형이다. 누구든 먼저 올라가 좋은 자리(발이 빠른 사람들은 두 면이 벽으로 막힌 모서리를 탐했다)를 선점하고 몸을 뉘거나 담요라도 하나 깔아놓으면 그것이 찜이다. 처음에는 배 안에서의 4시간을 우습게 봤다. 맨바닥에 등을 깔고 누워 있자니 온몸이 불편하고 딱딱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누군가 슬쩍 자리를 침범했다. 그래서 두 번째 여행부터는 패드형 매트리스와 얇은 침낭을 배낭에 담아와 깔고 덮었다. 잠자리가 완성되니 단단한 경계가 생겼다.페이스풀 사무장
자리를 펴고 교감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쳐 있을 때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마이크를 들고 객실로 들어왔다. 객실에 있던 모든 승객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안녕하세요? 객실에서 식사나 음주는 금지되어있습니다. 밖에 테이블이 마련돼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뭐 간단히 과자나 음료를 드시는 것은 괜찮습니다. 김밥도 옆에 계신 분들이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런데 맥주 정도는 어떨까,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맥주도 술이죠. 제가 도수로 술을 나눌 수도 없고 난감합니다. 규칙이니만큼 맥주도 밖에서 드셔야 합니다.” 차분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는 의외로 쉽게 전달됐다. 승객들은 “네”하고 대답했다.요런 기발함이라니
갑판으로 나갔다가 제주항이 시야에서 멀어질 때, 객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창으로 붉은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낙조다. 카메라를 들고 재빨리 갑판으로 나갔다. 예상대로 태양이 수평선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리안호의 제주발 운항시간은 낙조에 맞춰 있었던 것, 그 절묘함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러게, 사무장의 눈빛에서 뭔가 자신감이 있었어.’ 젊은 커플이 용감하게도 갑판 위에 테이블을 폈다. 그리고 제주막걸리를 올려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들고 바다 끝을 향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곳으로 쏠렸다. 선상 낙조와 제주 막걸리의 기발한 콜라보네이션, ‘크..’ 두 번째 탄성에 목젖이 떨렸다.따라하기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았다. 꼭 한번 따라 하리라 마음먹은 지 몇 주가 지난 후다. 한켠에 가지런히 정리돼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꺼내 갑판 끝 ‘관계자외 출입금지’ 라인에 최대한 밀착했다. 최고의 낙조 포인트다. 제주항으로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하얀 뚜껑의 제주막걸리와 육포를 올려놓고 비장의 목잔도 꺼냈다. 얼마 후, 검은 구름을 뚫고 태양이 송두리째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단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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