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나산그룹은 1980년부터 1998년까지 존속했던 패션·유통 기업을 말한다. 창업주는 안병균으로 1948년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기업 이름이 ‘나산’그룹이 된 것이다.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공사장 인부, 영화 엑스트라, 식당 종업원 등을 했다가 중화요리전문점으로 처음 사업을 시작했고, 1970년 명동 한복판인 한주빌딩 2층에 ‘해녀’라는 일식집을 냈다.
코미디언 이주일 만나면서
하지만 1974년 일식집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사망자 2명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망하게 되자 안병균은 유흥업소 웨이터로 일을 하게 됐다. 그리고 큰돈을 벌게 됐다.
이에 ‘극장식당’이라고 불리던 ‘무랑루즈(종로)’와 ‘초원의 집(북창동)’을 운영했다. 극장식당은 1980년대말까지 인기를 얻었는데 성인 나이트클럽보다 좀 더 격식을 갖춘 곳으로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해 공연을 하면 객석에서 손님들은 공연을 보면서 술과 음식을 즐겼다.
안병균이 극장식당을 운영하면서 가장 공들였던 사람은 당시 최고 인기를 구사하던 코미디언 이주일이었다. 그러면서 이주일과 함께 돈을 쓸어 담게 됐다. 그러면서 당대 최고 인기 연예인들이 줄줄이 출연했다.
의류사업으로 진출
극장식당으로 돈을 번 안병균은 의류 사업에 뛰어들면서 ‘나산’이라는 이름을 내걸게 됐다. 그것은 1980년 서울 종로5가에 의류도매업체 ‘문화데스크’를 세우고 1982년 고향 지명인 ‘나산’을 따서 ‘나산실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면서 각종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 그 중 여성 의류 브랜드 ‘조이너스’가 성공을 거두게 됐다. 그 이후 꼼빠니아, 메이폴, 트루젠 등의 의류 브랜드를 성공시키게 된다.
이후 1988년부터 사업다각화를 추진하면서 나산관광개발을 세워 레저사업에 손을 댔고, 1990년 나산산업, 나산인터내셔널, 나산CLC 등 그야말로 대기업으로 발돋움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 한 해에 41억원의 소득을 얻으면서 당시 현대, 삼성, 한진, 한화 등의 대기업 총수보다 더 많은 소득세를 납후했다.
1995년 서울 청담동에 있던 영동백화점을 인수해서 ‘나산백화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백화점 사업이 결국
하지만 백화점 사업이 결국 나산그룹을 해체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1996년 개국 1년여를 넘긴 민영방송인 광주방송 대주주 대주건설을 광주방송 지분과 함께 인수했고, 충남방적으로부터 한길종합금융까지 인수하면서 대기업으로 커나갔으며 한국프로농구 출범이 추진됐던 1996년말 중소기업은행 실업 농구단 소속 선수들을 인수하면서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나산 플라망스 프로농구단을 창단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과 차입경영으로 경영에 어려움이 발생하자 1995년 구조조정을 진행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1998년 최종 부도를 맞으면서 그룹 해체 수순을 밟게 되면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