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장마당
[역사속 경제리뷰] 장마당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4.05.29 14: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제비를 재연한 탈북민들./사진=연합뉴스
꽃제비를 재연한 탈북민들./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장마당은 북한에 있는 시장 중 민영시장을 우리나라에서 일컫는 말이다. 북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장마당의 어원은 ‘조선시대’ ‘농민시장’이다. 조선은 농본주의국가이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말엽이 되면서 상업이 발달하면서 3일장, 5일장 등 장마당이 열렸다.

일제강점기에도 장마당은 존재했고, 광복 이후에도 장마당은 존재했다. 김일성이 북한 지역에 정권을 수립하고 토지개혁과 화폐개혁을 하면서 장마당이 파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은 미약하나마 존재했다.

하지만 1958년 개인 상업을 폐지하고, 국영유통과 협동상업 형태로 과도적 배급제를 시행하면서 장마당이 폐쇄됐다. 그러나 국영 및 협동사업이 주민들의 필요를 모두 충족하지 못하면서 1964년 장마당이 부활했다.

그러나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는 장마당이 자본주의를 낳을 수도 있다면서 폐지에 힘을 실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김정일이 집권을 하면서 장마당이 유명무실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그런데 1989년 동구권이 붕괴되고,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자 공산주의 체제가 북한에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유통체계가 붕괴되면서 배급제가 붕괴됐다. 그러면서 경제가 파탄이 났다. 배급이 끊어지면서 북한 주민들은 비싼 시장가격에 물품을 살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장마당이 형성됐다.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 자신의 물품을 내다팔기도 했다. 그러면서 물물거래가 이뤄지게 됐다. 이어 초본적인 자본주의가 북한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김정은 시대가 도래하면서 북한 상류층 내부에서도 장마당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하기 시작했고, 북한 상류층 젊은이들은 장마당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문물로 인해 장마당에 상당히 우호적인 상황이 됐다. 이에 장마당을 통해 신흥자본가가 성장하게 됐다.

신흥자본가는 북한 상류층에 뇌물을 먹여서 노력영웅 등의 칭호를 받으면서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다. 김정은 시대에 경제특구도 17곳까지 늘어나게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