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90년 8월 2일은 이라크 군대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걸프전쟁이 발발한 날이다. 걸프전쟁은 이라크와 다국적군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이다. 다국적군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격퇴하고, 이라크에게 강제 병합된 쿠웨이트의 독립과 주권을 회복시켰다.
사실 걸프전쟁은 석유 때문에 발생한 전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패배를 한 미국의 부활을 알리는 전쟁이기도 했다. 또한 전쟁이 생중계가 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여러 가지 설 난무
사담 후세인이 걸프 전쟁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정도로 사담 후세인이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유력한 것이 쿠웨이트의 석유를 탐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쟁 발발하기 이전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국경의 유전지대인 루메일라를 두고 싸웠기 때문이다. 또한 쿠웨이트가 석유를 증산하면서 유가가 하락했고, 이라크 경제에 타격을 입었고, 이에 사담 후세인이 분노했다.
또 다른 설은 이란-이라크 전쟁 후 경제저긍로 막대한 부채를 지게 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이한 후세인 정권이 국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일으켰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설에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후세인은 처음부터 미국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었고, 쿠웨이트를 침공한다고 해도 미국은 묵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쿠웨이트 유전을 이라크에 빼앗기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걸프전의 의미
걸프전쟁은 그야말로 현대전의 총아이다. 스텔스 공격기, M270 MLRS, 패트리어트 미사일, 크루즈 미사일, AH-64 아파치 등 미군의 하이테크 무기들이 전세계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가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충격과 공포’였다. 무엇보다 공중전력이 현대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노태우 정부였는데 걸프전을 생중계로 봤던 노태우 정부로서는 국방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판단했다.
텔레비전 생중계로 미국의 무기를 실감한 전세계는 미국의 부활을 인정했다. 사실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미국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끝났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걸프전쟁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시청한 전세계 사람들은 “미국이 되살아났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세기말 공포’와 맞물리면서 한국 사회를 물들여갔다. 특히 노스트라다무스 예언과 맞물리면서 1999년 세계가 종말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돌면서 휴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걸프전쟁 당시 MBC는 특별취재반을 파견했는데 이때 첫 여성 종군기자가 탄생했다. 바로 현재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