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걸이 사기 사건
목걸이 사기 사건은 1772년 프랑스 루이 15세는 자신의 애첩인 뒤바리 부인을 위해 왕실 보석상 뵈머에게 유럽에서 가장 훌륭한 다이아몬드를 모아 목걸이를 만들어 오라고 명했다. 뵈머는 값비싼 다이아몬드 600개로 목걸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루이15세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 주인이 사라졌다. 뵈머는 루이 16세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목걸이를 사달라고 간청했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목걸이가 너무 비싸다면서 거절했다. 이때 프랑스 대귀족 출신 루이드 로앙 추기경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신뢰를 얻고자 했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추기경이 타락했다면서 싫어했다. 추기경이 온갖 스캔들과 사치스런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기경으로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눈밖에 밀려나는 것에 대해 초조해했다. 이때 잔 드 발루아 라 모트 백작부인이 추기경에 접근을 했다. 백작부인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목걸이를 가지고 싶어 하지만 공식적으로 구입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추기경이 대신 구입해줄 것을 원한다고 알려왔던 것이다. 그러면서 왕비 필체를 담은 편지를 전해줬다. 이에 추기경은 목걸이를 구입해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전달하면 왕비의 환심을 살 것이라고 확신했다.목걸이 사건 세상에 알려지고
하지만 이것은 백작부인의 사기였다. 편지는 위조된 편지이고, 실상은 목걸이를 백작부인이 갖고 싶어서 추기경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백작부인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작성한 편지라면서 위조된 편지들을 몇 번이나 추기경에게 전달했고, 왕비를 닮은 매춘부를 찾아 그녀를 왕비라고 속이고 야밤에 추기경에게 만나게 해줬다. 어두운 밤이었고, 추기경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매춘부를 왕비로 확신했다. 결국 추기경은 보석상 뵈머에게 2백만 리브르를 할부로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목걸이를 받아서 백작부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백작부인은 목걸이를 팔아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보석상 뵈머는 잔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잔금을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왕비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결국 진상조사를 하게 했다. 추기경은 재판에서 자신도 속았다고 하면서 무죄로 풀려났다. 그러면서 최종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목걸이 사기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프랑스 국민들은 목걸이 사기사건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깊숙이 개입돼 있다고 확신을 했다. 왕비가 최대 피해자이지만 프랑스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혁명정부가 세워졌고, 혁명정부는 앙투아네트를 심문했다. 왕비는 자신은 관련 없다고 호소했지만 이미 프랑스 국민은 앙투아네트를 죽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결국 단두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