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100m까지 진출
오히려 국회 압박
이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압박보다는 오히려 국회에 대한 압박의 성격이 강했다. 즉,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즉각 하야 하는 것은 물론 만약 국회에서 이에 대해 논의를 한다면 4월 퇴진론이 아니라 ‘탄핵’밖에 없다는 것을 국회와 정부에 알려주는 성격이 강했다. 결국 이 집회를 계기로 비박계가 탄핵 표결 참여를 결심하기로 했고, 친박도 어쩔 수 없다면서 탄핵에 참석했다. 당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인터뷰에 따르면 탄핵 표결에 예정됐던 12월 2일 당시까지 탄핵에 필요한 안정적인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시위로 인해 탄핵을 결심하게 됐다. 결국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1표, 무효 7표로 가결됐다. 6공화국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권을 바꾸게 됐고, 만약 국회 탄핵소추안이 부결됐다면 쿠데타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날 집회가 대한민국 역사를 바꿨다고 할 수 있다.해외에서도 주목했던 시위
무엇보다 이날 시위는 해외에서도 주목했던 시위이다. 왜냐하면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권을 바꿨던 시위였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촛불혁명’이라고 명칭을 붙일 수 있었다. 과거 5.16 쿠데타와 12.12 사건 그리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군부가 총칼로 정권을 획득하고, 87년 민주화운동은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 등 피를 통해 직선제를 쟁취한 반면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상당히 크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