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노예선 소송 사건, 종(Zong)호(號) 보험 소송 결말은
[역사속 경제리뷰] 노예선 소송 사건, 종(Zong)호(號) 보험 소송 결말은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3.02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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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서구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로의 항로를 개척하면서 아시아에서는 후추를, 아메리카에서는 사탕수수를, 아프리카에서는 흑인을 중개무역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해나갔다.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노획해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노예로 팔아넘겼다. 이에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항해하는 노예선이 존재했다. 그 노예선은 죽음의 노예선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의 항해는 대략 80일 정도 걸리지만 길면 6개월이 걸릴 수 있다.

조그마한 배에 많은 노예 태워

노예선은 100~300톤급 소형 선박인데 이 작은 배에 수많은 노예를 태우려고 했다. 그래야만 많은 노예를 아메리카에서 팔아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략 500여명의 노예를 태웠다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바닥에 포개 누워서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사슬, 족쇄, 산소부족, 식수부족, 탈수증 등등과 함께 용변도 제대로 볼 수 없어서 포개 누운 채로 용변을 봐야 했다. 실제 증언들에 따르면 6명이 한조가 돼서 긴 사슬에 묶이고 두 사람씩 발에 족쇄를 차야 했다. 엄청난 흑인 노예들이 배에 탔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했다. 초를 켜놓으면 곧바로 초가 꺼질 정도였다고 한다. 때로는 너무 많은 노예가 실리면서 물과 식량을 실을 공간이 부족하게 됐다. 이런 이유로 노예에게 하루 한끼 식사만 제공됐다. 많은 흑인 노예들은 탈수증으로 고생을 했고, 용변도 포개 누운 채 해야 하기 때문에 각종 전염병에 시달렸다. 자연스럽게 사망률이 높아졌다. 예상보다 너무 많은 노예를 실어서 식량과 물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일부 노예를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물에 빠지게 했다. 노예의 숫자를 줄임으로써 식량과 물 부족을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종(Zong)호 보험 소송 사건

1781년 9월 영국 리버풀 소속 노예선인 종(Zong)호는 과도한 노예를 싣고 자메이카로 향했다. 하지만 두 달도 안돼서 식량과 식수 부족 사태를 겪어야 했다. 선장으로서는 이대로 항해를 하면 모두 죽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선장은 사흘에 걸쳐 133명의 흑인 노예를 대서양 바다에 던져서 익사 시켰다. 그런데 선주는 1783년 이 사건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면서 보험회사가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노예는 화물

약관상 위급 상황에서 배를 구하기 위해 선장이 ‘화물’을 바다에 버린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선주의 주장이며 이에 죽은 노예 1명당 30파운드를 지급해 달라는 것이다. 법원은 ‘말을 바다에 던진 것과 마찬가지’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법원은 보험금 지급 요청을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선장이 흑인노예를 바다로 던질 때 “노예가 배에서 죽으면 우리가 물어줘야 하지만 노예를 바다로 던지면 보험사가 물어준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즉, 영국법에는 노예는 화물로 취급되기 때문에 화물을 바다에 던지면 그것을 보험사가 보험지급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의도적으로 보험금 타기 위해 노예를 바다에 던졌다고 판단해서 기각한 것이다. 즉, 노예는 물건이라는 인식을 선주도, 보험회사도, 판사도 했다는 점이었다. 이 사례는 노예해방에 자주 거론되는 사례가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흑인 노예에 대한 서구 사회의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화물로 취급했다고 해도 살아 있는 생명을 바다에 던지는 것이 말이 되냐는 것이다. 이것이 노예해방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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