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의 편리성
남성도 치마를 입은 이유는 일단 만들기 간단하기 때문이다. 바지를 만들자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만 치마는 쉽게 만들 수 있다. 특히 다리와 다리 사이를 잇는 가랑이 부분의 재단은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바지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치마는 간단하다. 천을 휘휘 두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남자들은 치마를 입었다. 영화 같은 곳에서 고대 그리스 전사들이 치마를 입은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갑옷인 ‘로리카’는 무릎이 드러날 만큼 짧았다.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미니스커트를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입었다. 그렇게 입었던 이유는 그리스와 로마가 비교적 따뜻한 기온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이 덥고 습하기 때문에 바지보다는 치마가 남성들이 생활하기 편리했다.바지의 역습
그렇게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서는 바지보다 치마를 입었다. 그런데 기원전후 게르만족 이동이 시작되면서 게르만족이 로마 땅에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로마인들에게 게르만족은 야만족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게르만족은 바지를 입었다. 게르만족이 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로마보다 비교적 추운 지방에 살았기 때문이다. 치마를 입게 된다면 다리 사이로 추운 기운이 들어오기 때문에 치마를 입을 수 없었다. 로마인도 처음에는 치마를 입었지만 갈리아, 브리티니아 등을 정복하고 살면서 바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겨울이 이탈리아에 비해 무척 추운데다 길었다. 더욱이 긴치마를 입으니 활동이 불편했다. 그러다보니 야만인의 옷 즉 바지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로마 정부로서는 이민족이 침입을 해서 로마 땅에 정착하는 것도 못 마땅한 상황인데 야만인의 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호노리우스 황제 시대에는 그야말로 게르만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따라서 게르만족 문화가 아니라 로마만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에 397년 4월 7일 황제는 야만인의 옷을 금한다고 밝혔다.미니스커트, 페미니즘의 상징에서 성 상품화로
미니스커트는 앞서 언급한대로 남성의 상징이었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경우 미니스커트는 남성 군복이었다. 반면 여성은 긴치마를 입어야 했다. 다리를 드러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중세와 근세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미니스커트를 처음 선보인 것이 1925년 프랑스 디자이너 폴 포와라였고, 1958년 영국 패션 디자이너 메리 퀀트가 선보이면서 대중적 붐이 일어났다. 그만큼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착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상당했다. 그러던 것이 195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에 대해 관대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면서 남성은 군대로 끌려가고 그 자리를 여성이 대신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게 됐고, 활동이 편리한 미니스커트를 입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니스커트에 대한 시선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여성 해방을 원했던 여성들은 그에 대한 반감으로 미니스커트를 입기 시작했다.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이 곧 여성해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페미니즘은 미니스커트가 여성의 성 상품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지목됐다. 과거 미니스커트는 여성해방의 상징이었다면 현재 미니스커트는 여성의 성 성품화의 대표적인 상징이 된 것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