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화개장터, 주말 문화공연 재개
[오늘 통한 과거리뷰] 화개장터, 주말 문화공연 재개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4.11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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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하동군
사진=하동군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경남 하동군이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최참판댁과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화개장터에서 사물놀이·힐링콘서트를 시작으로 2022년 주말 문화공연을 펼친다고 11일 밝혔다. 주말 문화공연은 오는 6월 말까지 최참판댁과 화개장터에서 각각 1∼2회씩 총 30여 차례 진행한다. 화개장터에서는 한국연예예술인협회 하동지회의 ‘화개장터 힐링 콘서트’가 펼쳐진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하면 ‘전라도’와 ‘경상도’의 화합의 상징으로 여겨진 장소이다. 화개장터가 언제부터 형성돼서 상거래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하지만 화개면지에서는 ‘조선시대 하동 지역의 시장분포라는 제목으로 당시 시장 5곳을 소개했는데 1770년대 1일과 6일 형식의 오일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하동군사(河東郡史)’의 기록에 의하면 화개장은 전국 7위의 거래량을 자랑한 큰 시장이고, 남원과 상주의 상인들까지 모여들어 중국 비단과 제주도 생선까지 거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엄청나게 큰 시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농산물과 해산물이 모여 거래하던 곳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상당히 큰 시장이 형성돼 있었다.
사진=하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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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위치와는 다르다

다만 화개장터가 지금의 위치와는 다르다. 100년 전인 1919년 4월 6일 장날에 300명이 모여 만세 운동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1920년대 만든 옛 지도에는 화개장(花開場)이라는 표식이 하천 윗쪽에 표시돼 있다. 이는 현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이다. 즉, 지금의 화개장터와 옛날 화개장터는 다른 지역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해방 이후에도 화개장터가 있었다. 하지만 6.25 전쟁 이후 지리산의 빨치산 토벌로 인해 산촌이 황폐해지면서 화개장도 함께 쇠퇴했기 때문이다. 화개장터가 쇠퇴하면서 상설 상점, 식당, 노래방, 술집 등 유흥업소가 과거 화개장터에 자리매김했다.
사진=하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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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노래 하나 때문에

화개장터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1988년 조영남이 ‘화개장터’ 노래를 들고 나왔다. 화개장터는 가요톱텐 기준으로 15~30위 사이에 거의 몇 달 동안 오르내릴 정도로 유명한 노래가 됐다. 화개장터가 만들어진 에피소드는 조영남이 윤여정과 이혼 후 인기가 급락하면서 김한길과 같이 셋방살이를 했다. 그러던 중 김한길이 화개장터 관련 기사가 있는 신문을 봤고, “이걸 노래해야 한다”고 조영남에게 권유했다. 조영남은 “장터인데 무슨 노래가 되냐”고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김한길은 전라도와 경상도가 합치는 뜻이 있다면서 노래 가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조영남이 곡을 붙였다. 화개장터 노래가 히트치면서 1997년부터 복원된 현대식 화개장터가 옛날 전통시장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화개장터에는 ‘화개장터’라고 쓰인 표지석과 화개장터의 유래 및 ‘화개장터’ 노래 가사를 적은 석조물, 역마상과 옛 보부상의 조형물이 있다. 또한 장터 내에 작은 공원이 있으며, 화개장터에서 일어난 3·1운동을 기념하는 화개장터 삼일운동 기념비도 서 있다. 매년 4월 초가 되면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10리에 걸쳐 벚꽃이 만발하며, 화개장터 벚꽃 축제가 열려 민속놀이 체험과 녹차 시음회 등 여러가지 행사를 벌인다. 또 5월에는 하동 야생차 문화 축제 기간에 맞춰 화개장터 역마 예술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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