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고대 로마는 전세계에서 몇 안되는 강대국이라는 이름을 얻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할 정도로 로마는 매력적인 제국이었다.
하지만 그런 로마가 멸망하고 서구 유럽은 뿔뿔이 나라가 나뉘게 됐고,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유럽연합이 탄생하게 됐다.
고대 로마가 멸망한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강력한 것은 아무래도 게르만 이동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대 로마 원인 중 하나가 경제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중 화폐개혁이 문제가 된다는 분석이 있다.
사치와 향락 때문? 정권유지 급급
고대 로마는 공화정이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카이사르 이후 황제 국가가 된다. 그리고 수많은 황제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문제는 이들 황제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신격화시켰다. 신격화 시켰다는 것은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끊임없는 반란과 역모 등 때문에 황제는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것을 위해 화폐를 뿌리는 경우가 발생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네로 황제였다. 네로 황제는 64년 로마 대화재를 맞이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네로 황제가 일부러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것인데 네로 황제는 당시 80km나 떨어진 해안 도시 안티움에 있었다.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로마로 전차를 끌고 달려왔다.
네로 황제가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인식이 우리에게 남아 있는 이유는 폴란드 작가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 ‘쿼바디스’(신이여 어디로 가야 하나이까) 때문이다.
로마대화재 이후 네로 황제는 로마 시내를 재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화폐 개혁을 단행했다. 기존의 금화와 은화의 함량을 낮추고 구리 등 값싼 금속을 섞어 발행하기 시작했다.
통화량이 늘어나면 통화 가치는 떨어져
네로 황제 이후 많은 황제들이 이른바 불량 주화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화폐개혁’으로 포장했다. 네로 황제 본인의 사치와 향락도 있었지만 불탄 로마 도시를 재건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후대 왕들은 그런 명분도 없었다.
특히 군인들이 황제로 오르면서 자신처럼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군인들에게 대대적으로 주화를 나눠줬다. 그러다보니 많은 주화가 필요했다.
문제는 로마 가까운 곳에 대량의 금광이나 은광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면 정복한 땅에서 금화나 은화를 공수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복하는 땅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금화나 은화의 공급이 줄어들게 됐고, 그로 인해 금과 은의 함량을 낮추고 구리 등을 섞기 시작했다. 급기야 순도가 5%짜리 주화가 탄생했다.
순도 5%짜리 주화가 탄생했다는 것은 오늘날로 이야기하면 종이 지폐를 무차별적으로 발행해서 시중에 살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통화량이 늘어나면서 통화가치가 떨어진다는 피셔의 총통화 이론이 적용되게 된다. 어빙 비셔의 교환방정식(MV=PT) 이론인데 화폐의 유통속도인 V와 재화의 거래량 T가 일정하다면 통화량 M이 가격 수준 P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즉, 통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
이런 이유로 군인 출신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물가 동결을 명했지만 알다시피 물가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동결한다고 해서 동결되는 것이 아니다.
시중에 돈이 풀면 돈을 거둬서 인플레이션을 막아야 하는데 로마 황제들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군인들에게 월급을 줘야 군인들의 충성이 유지됐기 때문에 황제들은 시중에 돈이 풀려서 인플레이션이 올라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주화를 나눠준 것이다.
이런 이유로 황제로 집권하게 되면 화폐를 무차별적으로 발행했고, 그것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됐다.
기축통화 자리 내어주면서 자급자족 경제로
사실 고대 로마는 공화정이나 초기 제정국가만해도 엄청난 상업국가였다. 급기야 인도나 중국과도 무역을 할 정도로 상업국가였다.
교역량이 상당했으며 이웃 페르시아에서도 로마 화폐가 통용됐다. 사실 그때 동양을 제외한 전세계에서 로마 주화는 기축통화나 다름 없었다.
문제는 이런 기축통화가 무제한 발행을 하게 된다면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런 인플레이션이 결국 로마 주화를 기축통화 자리에서 밀어낼 수밖에 없다.
당시 황제는 군대를 자유민이 아닌 용병으로 운영했다. 원래 로마 군대는 자유민으로 이뤄졌지만 자유민이 라티푼디움과 살인적인 세금으로 인해 몰락하면서 군대를 용병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로마 주화로 이들의 월급을 지급했는데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황제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용병을 로마 주화로 월급을 지불했는데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로마 주화로 용병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게 됐다.
당시 용병에는 게르만족도 포함이 돼있다. 더 이상 로마 주화로 용병을 유지하기 힘든 시점이 되면서 게르만족 장군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축출하면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다.
살인적 인플레이션, 상공업 몰락으로...중세 봉건국가로 나아가는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것이고, 실제로는 그 이전에 멸망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살인적인 물가에 로마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것을 꺼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곧 자급자족 경제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로마에서 중세 봉건국가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인 파티푼디움(장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즉, 장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그런 방식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상공업의 몰락은 로마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민족이 침략을 했을 때 이웃 라티푸디움과 협력을 하거나 서로마제국에 협력을 해서 물리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급자족 경제이다 보니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되고, 그것이 결국 서로마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황제의 힘이 약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귀족들이나 군인들이 각 지역으로 흩어져 라티푼디움(장원)을 이루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로마제국은 더 이상 지켜줄 귀족들이나 군인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결국 멸망을 한 것이다. 사실상 산소호흡기를 꽂고 있던 로마를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가 떼어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