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경제리뷰] 양반 유만주, 그리고 조선시대 영끌
[역사속 경제리뷰] 양반 유만주, 그리고 조선시대 영끌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8.03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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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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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양반 유만주는 정조대왕 때 사람으로 남산 근처 창동에 살았다. 매번 과거시험에 떨어지면서 유만주의 꿈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한양에 100칸짜리 집을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부친이 관직에 들어서자 유만주는 친지들의 쌈짓돈을 끌어모았고, 연리 30% 사채를 끌어, 명동에 있는 100칸짜리 집을 샀다. 이른바 조선시대 '영끌'이었다.

영남 제1부자 경주 최부자댁의 집이 99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양에 100칸짜리 집을 샀다는 것은 엄청난 부를 과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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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 초가집에서

당시 일기를 살펴보면 창동집은 초가집이었다. 그런데 부친의 관직이 높아지면서 살림살이가 넉넉해지자 번듯한 집으로 이사하려는 계획이 추진됐다. 유만주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에 살고 싶었다. 이에 1월부터 집주름이 권하는 창동과 그 근처 낙동, 수서, 공동의 집을 여러 군데 살펴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번번이 성사되지 않았다. 여기서 '집주름'은 오늘날 공인중개사를 의미한다.

그런데 결국 명동집을 구경하고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에 7월 24일 명동집 계약을 하고 집도면을 확인했다. 25일에는 집문서를 교환했는데 26일에는 아버지가 반대를 했다. 하지만 28일 이삿날을 확정했고, 8월 10~12일 이사를 했다.

보통 이같은 거래가 있을 경우 주선할 때마다 집주름은 1냥을 받았는데 돈 대신 먹이나 담배 등 현물을 받기도 했다. 집주름은 거래 과정에서 농간을 부리거나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아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집값을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유만주 역시 집주름의 농간에 의해 주변 시세보다 비싸게 샀다는 것을 계약이 끝난 후 알았다고 한다.

전세제도의 시효, 전당 제도

물론 유만주는 전당(典當) 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전당은 논밭을 담보로 돈을 융통하는 제도로 조선시대 후기에는 가옥에도 적용됐다. 즉 유만주는 100칸짜리 가옥으로 전당을 이용해서 돈을 빌릴 수도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퇴계 이황 선생은 전당을 이용해서 집을 구했다.

하지만 유만주는 친인척과 30% 이자로 사채를 빌려서 100칸짜리 기와집을 구입했다.

사실 조선시대는 계속해서 부동산 규제 정책을 펼쳤다. 태조 이성계는 주택법을 만들어 신분마다 대지면적, 가옥 크기를 제한하고 신축은 허가제를 실시했다. 또한 부동산 등기법도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신분과 직위에 따라 부동산 크기를 규제했다.

그런데 영조 때 한양 지역에 부동산이 엄청 폭등했다. 이는 이앙법(모내기)로 인해 쌀의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이것이 한양 부동산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 17년 어의동 본궁 담장 너머에 사는 군사들이 집단으로 집세를 깎아 달라는 취지의 소지를 제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대왕 시대 유만주가 주변 시세보다 비싼 가격이 100칸짜리 주택을 구입한 것도 이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10억원 정도는 있어야 한양에 번듯한 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세자빈의 어머니가 여기저기 이사 다니면서 세 들어 사는 것이 안쓰럽다면서 집을 사라고 면포 500필을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 면포 500필은 대략 10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유만주가 구입한 100칸짜리 주택은 엄청나게 고가의 주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 따지면 몇백억원의 주택이 아니었을까는 추정을 한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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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주 영끌의 결말은

유만주가 그렇게 영끌을 해서 주택을 구입했다. 하지만 부친은 1년 만에 파직이 됐다. 부친이 파직이 되면서 돈 나올 곳이 사라지면서 유만주는 울며불며 집을 팔기에 이르렀다. 급하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구입한 시세보다 더 저렴하게 팔아야 했다. 그로 인해 엄청난 투자 손실이 일어났다.

유만주는 그렇게 조선시대 영끌의 최후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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