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소양강댐 방류
[오늘 통한 과거리뷰] 소양강댐 방류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8.12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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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파이내셜리뷰=어기선 기자] 소양강댐이 지난 11일 오후 3시부터 수문을 열어 초당 600톤의 물을 내보내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소양강댐지사에 따르면 오는 19일 오후 4시까지 수문 개방이 이뤄질 예정인데 소양강댐 방류는 2020년 8월 이후 2년 만이며 1973년 10월 완공 후 역대 17번째 개방이다.

소양강댐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홍수조절’이다. 사실 한강에 수많은 댐이 있지만 한강 홍수조절 기능은 북한강에는 소양강댐, 남한강에는 충주댐이 담당한다. 팔당댐은 홍수 조절 기능은 없고, 방류를 약간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 이유는 댐 자체의 높이가 29m로 매우 낮기 때문에 홍수 조절이 불가능하다.

1950년부터 소양강댐 건설 고민

소양강댐은 1950년부터 건설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박정희 정권 들어서 경제개발 5개년 수립과 함께 하천 유역의 수자원 다목적 개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소양강댐의 건설을 보다 구체화했다. 다만 소양강댐 규모를 놓고 건설부와 한국전력 간의 견해가 심하면서 논쟁이 장기화됐다.

1960년 미국 토목회사인 스미스 힌치먼 앤 그릴스(Smith, Hinchman & Grylls)에 의하여 현지조사가 이뤄졌고, 당초 제안된 형식은 108m의 콘크리트 중력댐이었다.

1962년 11월 건설부는 일본 공영과 소양강댐 기술조사 및 설계 용역을 체결했는데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1967년에는 건설부가 한강유역 합동조사단의 건의에 따라 높이 122 m의 중력댐을 검토하게 됐다.

하지만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이 사력식을 제안했고 총공사비 203억원에서 34어원의 공사비를 절감하며 공기도 5년에서 4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콘크리트중력댐은 철근과 시멘트 등 건설자재를 투입해야 하는데 당시 새산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공수해야 했다. 즉, 막대한 건설비용이 일본으로 흘러가게 된 것이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도 끄떡없는 사력댐으로 검토를 했는데 안보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막대한 혈세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현대건설은 이미 단양에 시멘트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콘크리트중력댐이 아닌 사력댐을 제안했냐는 의문이 있다. 즉, 콘크리트중력댐을 제안했었어도 현대건설에는 비용적인 문제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시멘큼 매출에 큰 도움이 됐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소양강댐 주변에 자갈과 모래가 많았기 때문에 비용 절감 차원에서 현대건설에서 사력댐을 제안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물론 정주영 회장이 비용 절감을 통해 나라의 재정에 보탬이 되겠다는 선의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소양강처녀상./사진=픽사베이
강원도 춘천에 있는 소양강처녀상./사진=픽사베이
소양강 처녀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박경희씨와 윤기순씨. 2015년 당시 최문순 강원지사와 최동용 춘천시장을 만났다./사진=연합뉴스
소양강 처녀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박경희씨(오른쪽)와 윤기순씨. 2015년 당시 최문순 강원지사와 최동용 춘천시장을 만났다./사진=연합뉴스

소양강처녀의 실제 모델

소양강댐과 연결되는 노래가 바로 ‘소양강 처녀’이다. 소양강처녀는 반야월이 작사하고 이호가 작곡한 대한민국의 애창곡이다. 1970년 가수 김태희가 불러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소양강처녀의 실제 모델이 두 명이 있다. 작사가 반야월은 1990년 KBS 전국노래자랑에서의 인터뷰에서 소양강처녀 노래 모델이 윤기순씨라고 실명을 거론했다.

당시 가수지망생이었던 1953년생 윤기순씨는 춘천에서 서울로 상경해 명동 근처에 있던 한국가요반세기가요작가동지회 사무실에서 일을 했었다.

1968년 6월 윤기순씨는 민물고기잡이를 하는 아버지가 사는 춘천의 고향집으로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 사람들을 초청했고, 반야월도 춘천으로 놀러갔다. 이때 시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실제로 사무실에서 윤기순씨가 일을 했을 때 별명이 ‘소양강처녀’였다.

윤기순씨는 현재 춘천시 사북면 지암리 집다리골에서 민박을 겸한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다.

또 다른 소양강처녀 주인공은 1967년 3월 당시 18세 춘천여자고등학교 3학년 재학중이었던 박경희씨다.

박경희씨 부모는 여관과 선박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반야월은 해당 여관에 1달 가량 머물면서 곡을 썼다.

반야월은 여관을 떠날 때 박경희에게 “네 사연을 노랫말로 썼으니 나중에 레코드가 만들어지면 춘천에 와서 전해 주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반야월은 생전 인터뷰에서 “소양강 처녀는 어느 특정 인물의 얘기를 쓴 게 아니라 소양강 인근에 살던 모든 처녀를 주제로 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강원도와 춘천시는 두 사람 모두 소양강 처녀 실제 모델이라고 인정을 했고, 2015년 당시 최문순 강원지사와 최동용 춘천시장이 실제모델인 윤기순씨와 박경희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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