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프락치(밀정)
[오늘 통한 과거리뷰] 프락치(밀정)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8.18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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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경찰국장./사진=연합뉴스
김순호 경찰국장./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과거 프락치(밀정)의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김 국장은 자신은 프락치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세를 가하고 있다. 김 국장은 1983년 성균관대학교 3학년으로 이념서클 ‘심산연구회’ 회장이었다. 그리고 강제징집됐다. 1985년 전역한 후 김 국장은 복학하지 않고 노동운동가였던 최동 선배를 따라 부천에 있는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88년 중순 인천과 부천 지역 노동운동가들이 모여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를 설립했는데, 김 국장은 부천지구 조직책임자가 된다.
하지만 1989년 1월말부터 인노회 회원들이 치안본부에 줄줄이 연행되고, 3월 김 국장은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인노회 사건을 수사한 치안본부 대공 수사3과 경찰로 나타난다. 이에 야당은 프락치가 아니었냐는 의혹을 제기했고, 김 국장은 정당한 방법을 통해 경찰이 됐다고 주장했다.

프락치란

프락치란 러시아말로 특수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에 들어가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활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영어로 스파이가 되고, 우리 말로는 밀정이다. 순 우리말로는 ‘간첩’이고 인터넷 용어로는 ‘지능형 안티’이다. 스파이나 밀정보다 프락치가 더 유명한 것은 러시아에서 악명을 떨쳤기 때문이다. 제정 러시아 말기 민중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제정 러시아는 비밀경찰을 반체제 조직에 대거 잠입 시켜 정보를 수집했다. 1905년 1차 러시아혁명 당시에도 노동자 시위대를 이끌었던 게오르기 가폰 정교회 신부 역시 경찰 프락치였다. 이런 이유로 차르 폐하를 위한 평화시위를 주도했지만 결국 폭력시위로 얼룩졌고, 신부가 경찰 프락치라는 것이 드러났다.

우리나라도 프락치 역사 깊어

우리나라도 프락치 역사가 깊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본이 독립운동가를 색출하기 위해 밀정을 보내고, 독립운동가 역시 일본의 정보를 빼기 위해 밀정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면서 국회 프락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이 발생하면서 결국 반민특위가 해체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학생사회에 프락치는 존재했다. 6.3 항쟁 시기 유명한 프락치 사건은 YTP 사건이다. 학생사회에 존재하던 우파 학생 조직을 중앙정보부에서 접근해서 학생사회를 분열시킬 목적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1960년대까지 중정이 주로 학생사회에 침투하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1970년대에는 출세욕이 강하고 권력욕이 강한 학생들을 포섭해서 중정이 돈을 주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가난한 학생이 어느날 갑자기 거금을 사용하는 것에 의심을 품으면서 프락치 사건이 들통나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러다보니 중정이 학생들에게 직접 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미래를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실제로 프락치 행위를 하다가 훗날 정보기관에 들어간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또 다른 방식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강제징집하거나 남산 등으로 끌고 가서 고문을 해서 강제 전향시켜서 프락치로 만드는 방식을 사용했다. 프락치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다시 끌고 가서 고문을 했다. 이런 프락치로 인해 학생회는 더욱 폐쇄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학생회가 몰락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됐던 유시민 작가 당시 모습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됐던 유시민 작가 당시 모습

서울대 프락치 사건

프락치 사건의 대표적인 것이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다. 당시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으로 서울대 운동권 간부들이 서울대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4명의 타학교 학생 및 민간인들을 프락치로 판단하고 감금, 폭행한 사건으로 구속 후 징역을 살았던 사건이다. 당시 복학생협의회 의장이던 유시민은 폭행한 학생들을 대신해서 감옥에 갔고 지금도 회자가 되고 있는 항소이서가 나왔다. 학생회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유명무실되면서 프락치는 점차 사라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논란으로 촉발된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폭력을 조장하는 무리가 있다면서 프락치 문제가 다시 대두됐다. 촛불집회 이미지를 나쁘게 하기 위해 일부러 포격을 조장하는 무리가 집회에 숨어들어 시민을 선동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경찰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물론 아직까지 프락치에 대한 증거가 나온 것도 아니다. 오늘날 프락치라고 하면 인터넷 상에서 가짜뉴스 등으로 선동·선전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예컨대 현정부에 대한 불만 등으로 행동으로 보이자고 할 때 이른바 ‘초를 치는 누리꾼’들이 있기 마련인데 이를 두고 프락치가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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