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오늘리뷰] 8월 30일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사건
[역사속 오늘리뷰] 8월 30일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사건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08.30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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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살해 사건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살해 사건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97년 8월 30일 범인 전현주(당시 28세)가 서울 잠원종 뉴코아백화점 버거킹에서 귀가하던 피해자 박초롱초롱빛나리(사망 당시 7세)양 유괴해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유아 유괴 살해 사건 중 사실상 마지막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유명한 사건이 됐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당시 범인인 전현주는 임산부였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설마 임산부가”라면서 의심을 하지 않은 사건이기도 하다.

설마 임산부가...

1997년 8월 30일 범인 전현주는 귀가하던 피해자 박초롱초롱빛나리(이하 박나리)양을 구슬려서 소품 제작실 겸 창고로 사용하던 사당동 지하 창고로 유인, 유괴했다. 당일 저녁 총 3차례에 걸쳐 피해자 부모에게 공중전화로 2천만원의 몸값을 요구했다.

전현주는 첫 번째 협박 전화 이후 박나리양에게 수면제를 먹였고, 이후 깨어나자 울면서 집에 보내줄 것을 애원했다. 이에 전현주는 피해자를 목 졸라 살해했고, 시체는 창고에 유기했다.

다음날 전현주는 명동 한 ㅋ커피숍에서 피해자 부모에게 전화를 하던 중 발신지 추적으로 경찰의 검문에 걸렸다.

전화 통화 9분만에 전현주를 포위했지만 임신 8개월인 임산부가 설마 아이를 유괴했을까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체포에 실패했지만 카페에 있던 13명 모두에게 형사들의 미행이 붙어졌다.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던 전현주의 아버지는 범행 직후부터 자신의 딸이 가출한 상태인 것을 경찰에 알려졌다. 아울러 경찰에게 협박범의 목소리가 자신의 딸의 목소리라고 증언했다.

이에 전현주는 신림동 한 여관에서 검거됐는데 신고는 전현주 부모였다. 아무리 자신의 딸이지만 어린이 유괴 살해는 어떤 이유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살해 사건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 살해 사건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사치와 낭비벽 때문에

전현주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총학생회 간부를 맡기도 했다.

커피숍에서 검문할 당시 전현주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서울예대 후배들이 경찰에게 임산부를 거칠게 대하지 말라고 항의를 하면서 경찰도 풀어주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후에 서울예대가 엄청난 비난을 받아야 했고, 일부 학생들은 휴학을 해야 할 정도였다.

전현주가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사치와 낭비벽이 심해서 결혼 후 3천만원의 빚더미에 앉았기 때문이다.

박나리양 어머니는 범인이 검거됐다는 소식에 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지만 싸늘한 주검이 돼서 돌아왔다.

전현주 부모는 검찰에 검거되기 전부터 5번이나 전현주에게 자살을 권유했다고 알려졌다. 속죄하는 길은 자살 밖에 없다면서 자신들도 곧 따라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검거된 후 전현주는 동생에게 부모를 잘 보살피라고 신신당부를 할 정도였다.

사실상 마지막 유괴 살해 사건

유아 유괴 살해 사건은 박나리양 사건 이후 사실상 종적을 감췄다. 그 이유는 금융실명제 실시로 인해 차명계좌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유괴를 해서 돈을 부모에게 뜯어낸다는 것은 현실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CCTV가 보급되면서 더 이상 아이를 유괴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은행 점포를 중심으로 CCTV가 설치되면서 범인들이 돈을 찾을 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히기 때문에 더 이상 아이를 유괴하는 식의 범행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또한 아이들에 대한 교육 방식도 박나리양 사건을 계기로 변화를 꾀하게 됐다. 그 이전까지만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식의 어린이 유괴 방지 교육이 있었는데 그 낯선사람이라고 하면 ‘무섭게 생긴 남자’였다. 즉, 험상궂게 생긴 남자 어른이 친하게 접근하면 무조건 피하라는 식의 교육이었다.

하지만 임산부도 범인일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낯선 사람에 대한 교육의 방식이 바뀌었다. 이에 낯선 사람 조심 교육을 포기하는 대신 ‘안전한 행동’으로 교육 방식이 변경됐다. 안전한 행동은 낯선 사람 조심 교육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교육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젊은 임산부가 유괴범이라는 설정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모티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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