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1990년 10월 4일은 국군보안사령부에 복무하던 윤석양 이병(당시 24세)이 보안사가 정치계, 노동계, 종교계, 재야 등 각게 주요 인사와 민깐인 1천3030명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벌였다고 폭로했다.
노태우 정권의 친위 쿠데타인 ‘청명계획’이 폭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노태우 정권의 존폐가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아울러 윤 이병의 폭로로 인해 보안사의 힘이 약화됐고, 하나회의 위세가 축소되기에 이르렀다.
윤석양 이병의 폭로
윤 이병은 강원도 철원군 3사단에 복무 중이었는데 한국외대 재학 시절 ‘혁명적 노동자계급투쟁동맹’ 사건에 연루되면서 보안사로 연행됐다. 그러면서 서빙고 분실에서 강제로 대공 및 학원사찰업무를 80여일 동안 담당했다.
윤 이병은 고문에 못 이겨 운동권 동료 리스트를 토해내 모비딕에서 근무하게 됐다고 폭로했다.
그해 9월 23일 새벽 윤 이병은 위병소 근무자가 다음 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반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이용해 탈영을 하는데 이때 ‘청명계획’이라는 민간인 사찰 계획의 사찰 대상자 명부철과 세 장의 플로피디스크를 갖고 탈영한다.
그리고 10월 4일 양심선언을 한다. 청명계획에는 노무현, 김대중, 이기택, 문재인, 한승헌, 금승훈, 문동환, 강동규, 이효재 등 각계 주요 인사에 대한 사찰 문건이 있었다.
청명계획은 친위쿠데타인 비상계엄이 발동하면 민간인들을 어떤 식으로 체포할 것인지 보안사가 미리 체포 목록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를 위해 해당 민간인의 성향 등 평가가 끝났고, 체포를 위해 자택의 가구 배치, 진입/도주 가능 경로, 친인처 주거지 및 세세한 인적 사항 등이 포함됐다.
서빙고 대공분실 폐쇄
해당 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은 악화됐고,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은 10월 8일 이상훈 당시 국방부 장관, 조남풍 보안사령관을 전격 경질했다. 아울러 전설의 서빙고 대공분실도 즉시 폐쇄했으며 보안사가 ‘국군기부사령부’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사찰 대상인 민간인들이 결국 소송을 걸었고, 재판부는 헌법 위반 행위라면서 원고들에게 각각 200만원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보안사의 기능이 축소되면서 기무사는 군 사찰만 하게 됐다.
다만 2017년 계엄령 문건이 발각되면서 기무사도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안사에서 기무사로 이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태우 정권은 그야말로 궁지에 몰리게 되면서 야당과 협상에 나섰고, 지방선거가 실시되게 됐으며, 지방자치제가 뿌리를 내리게 됐다.
범죄와의 전쟁
윤 이병 사건은 범죄와의 전쟁에도 영향을 미쳤다. 워낙 여론이 악화되면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정국을 전환하기 위해 10월 13일 이른바 10.13 선언을 하게 되는데 ‘범죄와의 전쟁’이다.
조직폭력배 등 범죄자를 소탕하는 작업이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때에도 있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 때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지내면서 경찰력 상당수가 간첩조작 및 민주화 세력 탄압에 사용하면서 치안 공백이 발생했고, 강력 범죄가 급증했다. 이런 이유로 인신매매와 납치가 횡행했다.
그런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조폭 등에 인정사정을 두지 않으면서 대한민국 치안이 상당히 개선됐고, 현재 전세계에 인정을 받을 정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