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김장
[오늘 통한 과거리뷰] 김장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2.11.09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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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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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올해 김장 비용은 36만 450원이다. 대형마트 기준 김장 비용은 47만3090원으로 더 높았다. 지난해와 비교해 대형마트 1.4%, 전통시장 12.7% 오른 것이다. 김장철 막바지로 갈수록 비용이 더 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무, 고추, 양파 등 김장 재료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장바구니 부담이 커지고 있다. 다만 겨울배추 생산량은 평년보다 12.2% 감소할 것으로 보이고, 겨울무 역시 평년보다 생산량이 8.1%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김장이란

김장이란 초겨울 또는 늦가을에 겨울동안 먹을 다량의 김치를 담그는 행위 또는 그렇게 담근 김치를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장을 담그는 것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겨우내 채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김장의 시초이다.​ 김장이 우리나라 문헌에 기록된 것은 고려시대로 이규보의 ‘가포육영’에 따르면 “무는 장을 곁들이면 여름철 석 달간 먹기 좋고 소금에 절여 아홉 달 겨울을 대비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현대와 같이 배추로 김장을 한 것은 역사가 짧지만 무를 이용한 김장은 그 역사가 상당히 길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와 같은 형태의 배추는 해방 이후에 개량된 품종이기 때문이다. 속리산 법주사에는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된 석옹이 있는데 720년(성덕왕 19)에 설치가 돼 3천여 명의 승려들이 겨울철 김장을 위해 사용하던 김칫독이라는 전설을 담고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주로 무를 이용해 김장을 담궜지만 조선후기 배추로 만든 김치가 나타나면서 김장도 다양해졌다. 그 이유는 조선 후기 결구배추가 중국에서 품종이 육성됐기 때문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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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춘 박사의 노력으로

하지만 오늘날 같은 배추의 형태가 자리매김한 것은 우장춘 박사의 노력 때문이다. 우장춘 박사가 광복 이후 우리나라로 오면서 토종 배추를 김장 배추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김치 담그기 가지 알맞은 배추로 개발됐다.

품앗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김장

김장은 한 가정의 대규모 행사였다. 그 이유는 대가족으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한 집안에 3대가 사는 것은 기본인데다 친인척이 함께 사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에 4대까지 함께 사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가정에 식솔이 10여명 정도 되는 것은 기본이었다. 이런 이유로 김장을 하게 되면 기본 100포기 이상이었다. 조선시대 품앗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도 김장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김장은 한 가정의 대규모 행사였다. 이런 이유로 한 집안이 김장을 한다고 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팔을 걷고 나섰다. 그래야만 김장을 담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김장은 마을 행사였고, 돼지를 잡아 수육으로 삶아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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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가족화·도시화로

하지만 1970년대부터 핵가족화·도시화가 되면서 이웃문화가 사라졌다. 또한 냉장고와 김치냉장고의 보편화로 인해 장독을 땅에 묻어 보관하는 일이 사라졌다. 이런 이유로 김장을 굳이 해야 하냐는 인식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서구식 식단으로 인해 김치 소비가 점차 줄어든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됐다. 이와 더불어 비닐하우스 재배 등으로 사시사철 배추가 공급되면서 김장을 담그는 것이 굳이 필요하냐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식품회사들이 김치 사업에 뛰어들면서 마트에 가만 언제든지 김치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김장을 담글 필요가 없게 됐다. 최근에는 노인정, 복지시설에서 단체로 김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취약계층에게 김치를 나눠주는 것을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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