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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에게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통해 인간 본성의 이면을 그렸다. 많은 땅을 갖고 싶어하는 주인공 파홈에게 악마는 제안한다.
“해가 떠있는 동안 원하는 땅 밟은 곳은 다 너에게 주마. 다만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오늘 너의 고생은 무효가 된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쉬지 않고 걸었다. 종일토록 걷다가 시간을 보니 너무 멀리 온 것을 발견했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려고 뛰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며 죽을힘을 다해 겨우 도착했지만, 심장이 터져 죽고 말았다. 그래서 농부가 차지한 땅은 그의 육신이 묻힐 고작 반 평 땅 밖의 무덤뿐이었다.
1970년대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로 시작되는 ‘하숙생’ 가요는 인생의 출발지와 목적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향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젊은 시절에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커진다. 소위 회기 현상이라 할까? 코끼리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본능적으로 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찾아가 생을 다한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운다고 한다. 이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은 고향을 생각하는 본성이 있다.
사람의 영원한 인생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왜 사는가?’이다.
이런 질문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인생을 헛살았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고, 각기 다른 성공의 길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 비슷한 길만 걸으려고 하니 실패한다.
인생길은 싫든 좋든 누구나 가야 하는 필연의 길이다. 한 번 사는 인생길은 살아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동시에 있다.
나그넷길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잘 죽는 것이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된다.
20세기의 최고 지성인으로 알려진 사르트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병원에 있는 동안 소리 지르고 발악을 하고 미치광이처럼 고함을 질러 댔다고 한다. 그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에 죽음 앞에 비참했다고 생각된다.
세상에는 이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참 많다. 그중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돌아갈 집을 모르는 사람이다.
키르케고르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고향 잃은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살아온 날들에 대한 회한이 밀려온다. ‘저 나무들의 잎처럼 나도 가는데 과연 열심히 살았던가’ 하는 반성이 앞선다. 앞으로 살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음에도 눈앞의 욕망에 사로잡힌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 없다.
인간이 사용하는 가장 슬픈 말이 "아, 그때 해볼걸!" 이라는 데 아직도 마음 속에 메아리친다. 인생은 짧다. 시간을 낭비하는 나에게 인생이 더 짧게 느껴진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아쉬움으로 낭비하기 전에 오늘 이순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기회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기회를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한다면 기회는 끝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운을 기다리기보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 리카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