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통한 과거리뷰] 당항성
[오늘 통한 과거리뷰] 당항성
  • 어기선 기자
  • 승인 2023.04.0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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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경기도 화성시가 해안 일대에 있던 철조망을 지난해 철거한데 이어 해안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이 조성된다. 둘레길은 궁평항에서 전곡항까지 총 17km. 투입된 예산은 380억원 가량이다. 해당 길에는 갯벌과 염전, 전곡항 마리나와 백미리 어촌체험마을, 궁평항 해송숲 등 다양한 경관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군사철조망이 모두 철거돼 낙조가 아름다운 서해 바다를 시민들에게 오롯이 돌려드리고자 조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당항성은

당항성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가기 위한 최적의 관문으로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위치한 구봉산에 위치한 산성이다. 당항성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조선(船舶制造)기술과 항해술이 취약했기 때문에 주로 ‘해안을 따라’ 항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해안만 지키면 백제와 신라가 중국과의 교류를 막을 수 있는 땅이 바로 당항성이었다. 백제와 신라 역시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당항성 차지가 필수였다. 현재도 경기도 화성을 거쳐 굴업도를 경유해서 산동반도로 나아가는 것이 최단 거리다. 따라서 삼국시대 당시에도 조선기술과 항해술이 취약했다고 해도 당항성을 거쳐 산동반도로 항해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당항성이 필요했다. 당나라 소정방이 10만 군대로 백제를 침범할 수 있었던 이유도 신라가 당항성을 내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류의 중심지로

삼국시대를 거친 이후 당항성은 무역항이 됐다. 당나라로 갈 수 있는 최단 거리이기 때문이다. 통일신라는 경주에서 생산되거나 소비되는 물자를 울산항을 통해 해안을 따라 항해를 했고, 당항성에 도착하면 중국으로의 교역이 가능했다. 다만 조선술과 항해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당항성을 거치지 않고 중국과의 교역이 가능해지면서 당항성의 입지도 좁아졌다. 무엇보다 당항성의 가장 큰 취약점은 영역을 넓혀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인구가 많이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인구가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항성을 넓혀가고 싶어도 넓혀갈 수 없게 되면서 그 자리를 송악에 빼앗기게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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