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육류 파동 이전 삼겹살
삼겹살 구이는 1978년 이후 국내에서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삼겹살에 대한 기록은 1930년대 세겹살이라고 기록되기도 했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한강’에서도 독일로 파견간 광부들이 삼겹살 구이를 해먹었다고 기술할 정도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도 삼겹살 구이는 있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경제 성장을 위해 수출 주도로 전환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돼지고기 수출이었다. 이런 이유로 돼지고기 수출이 상당한 이익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에 대기업들도 양돈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삼성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은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 냥ㅇ돈사업부를 1973년 5월 출범시켰다. 그만큼 돼지고기 수출은 돈 되는 사업이었다. 우리나라는 그 이전까지 소고기를 주로 먹었고, 돼지고기는 잘 먹지 않았다. 하지만 1960년대 농사라는 이유 때문에 소고기 도축을 금했다. 그러면서 소고기 섭취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돼지고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1978년 육류 파동 이후 삼겹살
그러다가 1976년 한우 파동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한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면서 돼지고기 가격도 덩달아 뛰어오르게 됐다. 당시 우리 국민의 GDP가 높아지면서 그에 따른 고기 소비도 늘어났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에 1978년 국내 물가 안정을 위해 대일 돼지고기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면서 한우 로스구이가 삼겹살 로스구이로 대체됐다.휴대용 가스 버너 출시
삼겹살 구이가 우리나라 식당에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휴대용 가스 버너(일명 부르스타)’가 출시 때문이다. 1980년대 고도성장을 하면서 직장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지면서 회식 때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돼지고기가 보급되고, 휴대용 가스 버너가 보급이 되면서 식당가에는 빠르게 삼겹살 구이가 퍼져 나갔고, 이것이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류를 타고 전세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삼겹살 구이는 엄연히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고, 그리고 우리나라를 통해 전세계로 알려진 우리의 식문화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