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21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함께 참배했다.
한일 정상이 위령비를 찾아 참배를 한 것은 역대 최초다. 또한 우리 정상이 위령비를 찾은 것도 역대 최초이다.
이날 참배에는 피폭 1세대인 박남주 한국원폭피해자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91)과 피폭 2세인 권준오 재일본대한민국국민단 부위원장(74) 등 한국인 원폭피해자 10명도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두 정상의 참배는 과거 히로시마 원폭으로 희생된 한국인을 위로하고, 한일 양국이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함께 준비해 나가자는 다짐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호작전이란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다. 이것이 우리 인류의 최초 원폭 투하이자 마지막 원폭 투하이다.
미국이 원폭을 투하하게 된 이유는 일본군이 ‘결호작전’과 ‘옥쇄작전’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은 그해 12월 몰락작전을 구사하려고 했다. 몰락작전은 연합군이 일본 본토를 상륙해서 항복을 이끌어 내는 작전이었다.
몰락작전의 일환 중 하나가 광복군의 서울 진공 작전이었다. 하지만 몰락작전도 서울 진공 작전도 결국 원폭 투하로 인해 일본이 항복을 하면서 무산됐다.
결호작전은 일본군이 일본 열도와 제주도의 절대사수를 위해 수립한 작전계획으로 방어전략이다. 핵심은 ‘한명의 미군이라고 죽이는 것’과 ‘옥쇄’였다.
옥쇄는 연합군에 항복하느니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면서 일본군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도 강요한 것이었다.
일본 국왕 항복 전까지 모두 죽기 각오로
결호작전은 연합군에게 항복하지 않고 무조건 저항하고, 그것은 일본군 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해당된다. 만약 연합군에 점령되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바로 결호작전과 옥쇄이다.
결호작전의 핵심은 ‘천황제 유지’와 ‘조선 땅 등 식민지 유지’ 등을 연합군에게 관철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이유로 1억명 옥쇄 계획을 세웠다. 즉, 결호작전을 결행하다가 점령 당하면 일본 국민 1억명이 모두 옥쇄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실행됐다면 연합군이 수십만의 희생됐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원폭을 투하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이유는 ‘1억명 옥쇄 계획’ 때문이다.
만약 무조건 항복 안했으면...
미군은 이미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을 통해 상륙작전에 대한 경험이 풍부했다. 반면 일본군은 미군을 상대로 결사항전의 저항을 한다고 해도 이미 군대에는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 미군이 상륙한다고 해도 그 피해가 최소한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미군이 일본 본토를 점령하면 그에 따라 일본 국민 1억명이 옥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막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미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떨어뜨려서 일본군의 전투 의지를 완전히 상실시켜야 했다. 그래야만 일본 국민 1억명을 보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시 일본 군부는 자국의 국민을 인질로 삼아 결사항전을 펼쳤다. 만약 원폭을 떨어뜨리지 않았다면 지구상에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사라질 뻔 했었다. 그만큼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군부는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세력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