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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리뷰] 누구에게나 오는 어려움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통할지를 결정하는 조각가다. 어떤 자녀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어머니는 자녀를 데리고 부엌으로 가서 같은 모양의 세냄비에 물을 끓인 후 첫 번째 냄비에는 당근을 두 번째 냄비에는 계란을 세 번째 냄비에는 커피를 집어넣고 물이 끓도록 내버려 두었다. 20분 정도 지난 후 불을 끄고 당근,계란, 커피 물을 식탁에 올려놓고 이렇게 물었다.
“딸아 무엇을 볼 수 있니?” “당근,달걀, 커피가 있네요” 어머니는 딸에게 다가가서 직접 만져보라고 했다. 당근은 본래 딱딱했는데 물렁물렁해졌고, 달걀은 원래 깨지기 쉬운 것인데 오히려 딱딱하게 변했고, 커피콩은 형체가 사라져버렸다. 어머니는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한다.
“냄비에 끓인 물은 각자 현재에 처한 어려움이다. 그러나 반응은 제각각이다. 평소 당근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려움을 당할 때 쉽게 포기한다. 계란은 어려움을 겪을수록 내부가 더 단단해진다. 커피콩은 어려운 상황 자체를 바꿔 향기롭게 변한 것이다.
“딸아 어려운 상황에서 당근, 계란, 커피 어느 쪽을 선택할 거니?” 이 모두 너의 선택에 달렸다.” 사실은 커피콩 자체만으로도 커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커피콩이 될 것인지 당근이 될 것인지, 달걀이 될 것인지 그것은 나만이 정할 수 있다.
미국 여성사회 운동가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퍼스트레이디는 이렇게 말했다. “ 한 사람의 인생관은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선택에 의해 잘 드러난다. 길게 보면 우리 스스로가 우리 삶을 만들어가며 우리 자신을 만든다. 우리가 한 선택은 궁극적으로 우리 책임이다.” 인생은 스스로 연출과 연기하는 큰 무대이다. 선택에 따라 좋은 연극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