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감자탕은 돼지의 등뼈와 목뼈 부위로 만든 탕이다. 칼칼하면서 매콤하고 약간 껄쭉한 국물이 끝내준다.
감자탕의 어원 중 잘못 알려진 어원이 돼지 등뼈를 감자라고 불러서 감자탕이라고 부른다는 것인데 사실이 아니다. 돼지 등뼈를 감자 혹은 감자뼈로 부른바가 없다.
인천항 개항 이후
감자탕은 삼국시대 때부터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먹었던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돼지’가 많이 먹는 가축이라는 점에서 다른 지역에서는 사육하기 쉽지 않은 가축이다. 하지만 호남은 호남평야가 있기 때문에 식량 생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했다. 그러다보니 돼지를 사육하는 것이 다른 지역에 비해 용이했다.
이에 돼지를 도축해서 고기를 취하면 뼈 등 부산물이 남는다. 그것을 서민들이 끓여서 먹었다고 한다.
감자탕이 본격화된 것은 인천항 개항 이후이다. 1890년대 후반 경인선 철도 공사가 이뤄지면서 인천에 인부들이 동원됐다. 육체적 노동 강도가 높은 인부들이기 때문에 체력 회복과 피로 회복을 해야 했고, 열량이 높고 포만감이 들어야 했다.
감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가 1800년대 초반 청나라로부터 유래됐다는 설이 강력하다.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청나라 상인들이 인천항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다. 즉, 돼지 부산물과 청나라 상인들로부터 유입된 감자가 합쳐지면서 감자탕이 만들어진 것이다.
박정희 정권 양돈업 육성정책 이후
감자탕이 본격적으로 서민 음식이 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박정희 정권 때 이른바 양돈업 육성정책이 1968년부터 시작되면서이다. 당시 돼지고기를 일본으로 수출하면서 부산물이 늘어났다. 이에 그때부터 돼지 등뼈를 이용한 탕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게 됐다. 아울러 가장 흔한 작물인 감자까지 넣어지면서 감자탕이 서민 음식으로 부각된 것이다.
실제로 1980년대 정부종합청사 뒤 내자시장이나 광장시장, 동대문시장 등에서는 뼛국에 삶은 감자를 얹어서 끓여줬다.
감자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90년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그때부터 ‘감자탕’이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게 됐다. 이때만 해도 감자와 등뼈의 비율이 50:50이 될 정도로 감자가 많이 들어갔다.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
오늘날 형태의 감자탕이 된 것은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이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인해 살이 많이 붙은 돼지 목뼈가 수입되면서 뼈다귀 살을 발라 먹는 형태가 됐다.
덩달아 국내 감자 가격이 급등을 하면서 감자탕에 점차 감자가 사라지게 됐고, 돼지 등뼈만 남는 형태가 됐다. 물론 식당마다 감자와 등뼈의 비율은 천차만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