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한때 세계 최대규모의 토목공사로 불리던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성공시키며 동아건설을 국내 굴지의 건설사로 키워냈던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 25일 오전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동아그룹의 모기업은 ‘동아건설’이었다.1945년 최원석 전 회장의 부친인 최준문 창업주가 ‘충남토건’이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가 1949년 ‘동아건설산업’ 으로 개칭하며 꾸준히 동아건설로 불렸다.
동아건설의 최전성기는 1980년대부터 90년대 사이다. 1975년경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첫 해외사무소를 건립하고 해외 건설사업을 맡아오던 동아건설은 1983년경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맡게 됐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는 사하라 사막지대 내륙으로부터 35조톤에 이르는 매장 지하수를 지중해 연안도시에 공급하는 대공사로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총 길이 5000km가 넘는 거대한 송수관을 사막에 매설해 농업‧공업‧생활용수를 공급할 목적의 이 사업은 ‘세계 최대규모의 토목공사’로 불렸다.
동아건설은 1983년 당시 39억달러에 1단계 공사를 수주해 동남부 지역 1895km의 수로를 1991년 완공했다. 이후 1652km의 송수관 라인을 수도인 트리폴리까지 연결하는 2단계 공사도 동아건설이 맡아 1996년 8월 통수식을 거행함으로써 완공했다. 1~2단계에 투입된 공사비만 102억 달러, 현재 가치로는 1000억 달러(135조 가량)에 달한 수준이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계기로 우량기업으로 급성장한 동아건설은 인천에서 김포까지 간척사업에 참여하고, 성수대교를 건설하는 등 굵직굵직한 국내외 사업들을 잇따라 수주했다. 이 당시 동아그룹은 재계순위 10위, 소유한 계열사만 22개에 달했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달리던 동아건설은 1990년대 후반부터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1994년 성수대교가 붕괴된 것과는 별개로 1995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최원석 전 회장이 법정에 서는 일이 있었다.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가 겹치며 경영난이 심화됐고 유동성 위기에 어려움을 겪던 도중 1998년 9월 워크아웃 1호 기업으로 지정됐다. 최원석 전 회장은 1998년 회장직에서 물러났고 재산이 몰수됐다.
동아건설은 2001년경 끝내 파산했다. 모체인 동아건설이 파산하면서 동아그룹 역시 산산이 쪼개졌다. 동아증권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세종기술투자로, 대한통운과 대한해운이 청산된데 이어 서해에너지, 서원레저, 동아항공 등이 줄줄이 매각됐고 동아생명도 구조조정을 겪은 뒤 금호생명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동아건설의 파산을 놓고는 아직까지 많은 의혹이 남아있다. 당시 동아건설이 국내 아파트 공사를 포함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국내외 공사를 다수 맡고 있던 상황에서 ‘파산’이라는 결정이 나온 것에 대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많았으며, 계열사 매각 과정에서도 ‘헐값 매각’ 등 말들이 많았다.
이후 동아건설의 파산과 관련해 최원석 전 회장 측은 생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동아그룹은 김대중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강탈당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삶을 회상하며 직원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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