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심 깊어진 주류업계 “해피한 상황 아냐, 회피하고 싶은 지경”
과세형평성 문제 해결에는 ‘긍정적’…소주값 인하 가능성은 ‘글쎄’
[파이낸셜리뷰=박영주 기자] 정부가 내년도 1월1일부터 국산 소주와 위스키 등에 ‘기준판매비율’을 적용하는 내용의 주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세 부담 경감을 통해 ‘주류가격 안정을 유도’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인데, 이에 대해 주류업계에서는 회의적 시각을 내비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취지에서 보자면 긍정적일지라도 물가안정 측면에서 보면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출고가에 일부 영향을 준다 하더라도, 판매채널에서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가격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일각에서는 올해 정부가 라면업계를 상대로 가격인하 압박을 가한 것처럼, 주류업계 역시도 세법 개정을 빌미로 압박을 받을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출고가의 경우 세금 외에도 원‧부자재‧에너지 비용 등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는데 세부담 경감 만으로 정부에서 업계에 인하 요구를 한다면 상당히 당혹스러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4차 비상경제차관회의 겸 제4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내년부터 국내제조 주류에 대한 기준판매비율제도를 도입해 주류가격 안정을 유도할 것”이라 말했다.
김 차관은 수입주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국산주류에 대한 세 부담을 경감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오늘부터 관련 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연내 필요한 조치를 완료해 내년 1월1일 출고분부터 적용할 것”이라 설명했다.
해외에서 수입되는 주류는 ‘수입신고가’를 과세표준으로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류는 ‘제조장 반출가’를 기준으로 해 판매관리비 등이 과세표준에 포함됐다. 때문에 똑같은 위스키라 하더라도 수입산이 국내산 보다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실제로 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입산 주류와 국내제조 주류의 과세표준 문제는 그동안 업계에서 꾸준히 지적해온 문제인 만큼, 이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바로 잡힐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세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류업계들이 두손 들고 환영할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업계에서는 이로 인해 발생할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다른 주류업계 관계자는 “기준판매율 적용은 긍정적이지만 이를 계기로 소주가격 인하를 유도한다고 하면 매우 회의적이다”라며 “통상적으로 한번 올린 가격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식당‧주점에서 판매되는 소주값에는 인건비, 원‧부자재 가격, 전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이 모두 반영돼있다. 출고가 10원 내려간다고 점포들이 가격 인하에 나서겠나”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기준판매비율이 분석을 거쳐 결정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정부에서 결정하면 그에 따를 계획”이라면서도 “주류업계로서는 해피한 상황 아니냐는 시각이 많지만 실상은 회피하고 싶은 심정”이라 귀띔했다.
업계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이번 발표를 하면서 “주류가격 안정을 유도할 것”이라 말한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가격인하 또는 동결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오뚜기‧풀무원 등이 일부 제품의 가격을 올리는 공문을 보냈다가 이를 철회한 사례가 있지 않나. 정부에서 가격 누르기를 하면 당장은 업체들이 따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인상 시기만 늦추는 효과에 그칠 것”이라며 “세부담 경감으로 가격안정을 유도한다는 방향성은 조금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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