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보신탕은 한국 요리의 하나로 개고기를 사용해 끓인 탕을 말한다. 원래 이름은 ‘개장국’인데 속된 말로 ‘멍멍탕’이라고 부른다.
이런 것을 1960년대 모 언론사 모 기자가 개고기로 만든 국을 ‘보신탕’이라고 명하면서 그때부터 보신탕이라고 불렀다.
반려동물이면서 훌륭한 식재료
‘개’는 인류와 함께 한 반려동물이면서 훌륭한 식재료로 취급됐다. 개를 먹는 민족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마야의 기록에도 남아있었고, 서구권 프랑스는 1910년까지 개고기집이 있었고, 로알 아문센 등 극지 탐험가들은 식량이 떨어지면 썰매견을 도살해 잡아먹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보신탕을 먹었다는 것은 한신의 고사 ‘토사구팽’에서 나온다. 즉, 토끼 사냥이 끝나자 개를 끓여 먹는다는 말인 토사구팽에서도 보신탕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농경문화를 겪은 민족이 보신탕을 먹는 습성이 있다. 그 이유는 소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닭은 ‘알을 낳고’,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는 특별히 이익을 주는 가축이 아니었다. 물론 목축업을 한다면 개는 유용한 가축이지만 농경사회에서는 특별한 이익을 주는 가축이 아니었다. 따라서 개고기를 먹는 습성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농경사회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고기는 조선시대 평민들이 자주 먹던 고기였다. 앞서 언급한대로 소는 농사를 지어야 하기 때문에 도축을 할 수 없었고, 닭은 알을 낳아야 하기 때문이고, 돼지는 고기를 얻는 것에 비하면 먹는 양이 많기 때문에 ‘개’에 조선시대 평민들은 주목했다.
정조대왕은 보신탕을 즐겼는데 영의정이었던 김상철도 찬성했다. 즉, 조선시대에는 평민 뿐만 아니라 기득권에서도 보신탕을 즐겨했다.
특히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에서는 보신탕이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 이유는 훌륭한 단백질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에서는 조선총독부에 쌀 등 자신의 재산이 공출되면서 먹을 것이 없자 백성들은 ‘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숟가락 하나라도 공출해 갔지만 ‘개’는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워낙 단백질이 부족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더운 여름날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보신탕에 사람들이 주목했다.
천주교 ‘보신탕’ 먹는 이유
우리나라 천주교에서 보신탕을 먹는데 그것은 바로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문이다.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면서 그에 따라 천주교 신도들이 숨어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문제는 그로 인해 단백질 보충이 쉽지 않아졌다. 그때 보신탕을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개’를 주목했다. 또한 천주교 신자들을 통해 서양 특히 프랑스에 보신탕 문화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날 프랑스에서 한국은 개고기를 먹는 문화가 있다는 인식을 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