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 기치로 내세웠지만
환멸 느끼는 민심
응오딘지엠 이후 쿠데타 연속으로 군정 그리고 응우옌반티에우가 집권했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통치 능력 등으로 남베트남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만 그들은 북베트남이 통일을 하는 것은 반대를 했다. 그것은 반공주의가 상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은 사실상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분단됐지만 ‘하나의 민족’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은 다른 민족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증오가 상당했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 했을 때에도 식민지배를 베트남 전지역에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베트남은 식민지배 시절에도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여기에 1940년대 일본군까지 들어오면서 베트남은 더욱 복잡해졌다. 여기에 군벌 역시 막장을 달리면서 그에 따라 민심은 더욱 돌아서게 됐다.명분 없는 싸움돼
베트남전이 시작됐을 때 북베트남은 직접적 공세가 아닌 베트콩을 지원하면서 사회 혼란을 일으키는데 주력을 했다. 베트콩을 남베트남 정부에 저항하는 집단으로 포장했다. 그런 가운데 응오딘지엠의 각종 비리 등이 서방에 알려지면서 미군의 개입에 대한 명분이 점차 약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68운동으로 대변되는 반전 운동이 미국 전역에 일어나면서 베트남 전쟁은 점차 명분이 약해졌다. 만약 남베트남이 정통성을 갖고 있고, 부정부패에 대한 확실한 척결을 했다면 명분 있는 싸움이 되면서 그에 따라 미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전쟁에 임했을 것이다. 흔히 보수세력이 남베트남은 간첩의 공작과 공산주의자의 국론 분열 조장으로 망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으로 남베트남이 멸망했다는 것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간첩과 공산주의자의 국론 분열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결국 남베트남의 정통성이 약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UN이 인정하는 합법적인 국가였으며, 군부독재 시절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부정부패를 척결하면서 민주주의를 확립했다는 점에서 남베트남과는 상황이 다르다.저작권자 © 파이낸셜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